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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그랜마스터는 뭔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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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그랜마스터는 뭔가 다르다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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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구(흰색 도복)와 이소룡(검은색 도복), 그랜마스터는 뭔가 다르다
▲ 이준구(흰색 도복)와 이소룡(검은색 도복), 그랜마스터는 뭔가 다르다

이소룡기념사업회를 하며 많은 태권도 그랜마스터를 만났다. 마스터를 '사부'로 번역한다면 그랜마스터는 '대사부'이다. 9단이라면 살아서 받을 수 있는 최고단이다. 9단이 되기까지 그들이 겪어야 할 시련과 극복의 과정은 당연히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삶이 주는 교훈은 우리가 본받을 만하다.

태권도에 입문하면 한국에서는 흰 띠, 노란 띠, 파란 띠, 빨간 띠를 거쳐 1년 후 검은 띠를 받는다. 외국에서는 12가지 색의 띠가 있어 2~3년 후 입단하여 검은 띠를 맨다. 그 과정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색을 달리해 승급된 것이며 그 띠에 맞는 인정을 받고 그 색에 준하는 대접을 받게 된다.

승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단에서 한 단계씩 올라가며 정신적인 면에서도 수련을 하여 존경받을 수 있는 인격수양까지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 수련이 없다면 승단하면서 인간 병기만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단자들은 싸움패들과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절대절명의 순간에만 본인의 보호를 위해 그것도 일부의 실력으로 상대를 제압할 뿐이다. 이소룡이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사부스러움이다.

이렇듯 승단하며 사부가 되어 간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성숙해져 가는 과정이다. 매일의 육체 훈련 외에 사부는 제자들을 모아 무술철학 및 인격도야의 교훈을 들려준다. 그래서 진정한 무도인으로 탄생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랜마스터는 제자는 물론 우리 모두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마스터들 중에서도 그랜마스터는 비단 수련기간이 길어야 하거나 나이만 차서 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수련을 거듭하며 인격적인 완성체가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마스터가 되어 한눈을 팔고 운동을 게을리 한 자가 그랜마스터가 될 수는 없다. 내 주변에서 보아온 사례도 있고 적은 수입에 욕심을 부리며 운동과 멀어진 케이스는 얼마든지 있다.

그랜마스터 중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하는 분들은 더욱 특별하다. 배우라는 직업은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해낼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요구한다. 그것은 끝없는 자기 수련과 인내심으로 빛을 발한다. 같은 장면을 자신의 육체를 혹사하며 수없이 촬영하며 하나의 예술같은 장면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수련을 하지 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며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이들은 금방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을 인내하며 감독이나 스태프의 주문에 수도 없이 반복하며 최고의 미학을 보여주는 배우들은 남다른 이들이며 쉽지 않은 직업인이다.

그들은 오랜 수련을 통해 도전정신과 극기능력이 남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말 한마디 통하지 않고 불편한 삶을 각오하고 해외로 진출하고 그곳에서 지도자로 인정받으며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비단 오랜 기간 활동하여 그랜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그만한 사회봉사와 제자들을 향한 희생정신이 곁들여져야 가능한 일이다.

미국 덴버에 거주하는 <귀문의 왼발잽이>의 바비 김 그랜마스터의 경우 그곳 교민들의 온갖 궂은일에 나서 해결사 역할을 대신하므로 교민들 모두가 존경하는 그랜 마스터가 되었다. 황정리 배우는 살아있는 이소룡 같은 대우를 받으며 해외의 세미나 및 각종 행사에 초청받고 정계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배우로서의 인기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런 것은 그랜마스터가 주는 믿음과 존경심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최근 기네스에 이름을 올린 권영문 그랜마스터의 경우 각종 무술을 섭렵하며 10개의 9단 인증서를 갖게 되었다. 그의 자신을 낮추는 모습에서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이 절로 떠오른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낮추는 모습은 진정한 그랜마스터의 모습이다.

백황기 그랜마스터 역시 홀홀단신 무일푼으로 도미하여 반 년 간의 사범생활을 거쳐 서부지역에 몇 개의 도장을 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까지의 성공담에서 다시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을 요약하며 목표를 세우고 끝없는 도전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지한재, 황인식, 유병용, 양성오, 김사옥, 정준, 사이먼 리 그리고 거명안 한 다른 분들도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미 정계에 유력자로 추앙받는 이준구(준 리) 그랜마스터 역시표본적인 케이스이다.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는 개척자들인 해외로 진출한 그랜마스터들의 숨은 노력이 있어 그들의 조국인 한국의 발전이 그만큼 당겨졌다는 생각은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2013년 8월 25일 제33회 세미나에서 이준구 그랜마스터
▲ 2013년 8월 25일 제33회 세미나에서 이준구 그랜마스터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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