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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애창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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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애창곡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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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산행을 마치고 뒷풀이에서
▲ 2008년 산행을 마치고 뒷풀이에서

살아가면서 가무음주를 피할 수는 없다. 살다보면 보면 마이크가 돌고 돌아 내 차지가 된다. 나도 노래 좀 한다고 자부했는데 이게 다 옛말이 됐다. 요즘 한국인치고 가수 아닌 사람이 없지 않는가? 모두 노래방 덕이지만 정말 가무음곡에 일가견 있는 민족이다.

요즘은 솔직히 노래방 가기가 싫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세대 간의 갈등을 노래들을 통해서 새삼 느끼기 때문이다. 차라리 맥주 한 잔 기울이며 간극을 줄이려 대화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이즈음 노래방은 철저히 신세대, 구세대의 갈림방이다.

폼 잡고 노사연 가수의 <만남>, 최성수 가수의 <해후>를 부를 수도 있겠지만 신이 안 난다. 1980년대의 조용필 가수의 노래나 발라드까지는 그래도 소화되지만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 곡은 절대 소화를 못한다. 사실 들어도 별 감흥이 없다. 댄스음악은 아예 관심 밖이다. 아이들이 옛 노래를 들으면 재미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음악이 나라와 시대를 초월한 장르라지만 대중가요란 세대 간을 초월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물론 요즘은 트로트 강세라 젊은 사람마다 선호도가 갈린다.

노래방이 가기 싫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래방에 가서 신세대 노래라도 한 곡 멋지게 부른다면 젊은 오빠 소리도 들을 수 있겠지만 그 노래를 연습할 시간도 없고 젊은 오빠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대중가요란 대중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어야 할 텐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노래도 엄청 바뀌어버렸다.

광복 60주년으로 MBC가 방송한 나훈아 가수의 <아리수> 공연에서 외국인 연주자가 “한국의 팝송을 무어라고 부르는가?” 라고 물어서 나훈아가 대답이 궁색했다고 한다. 트롯이라고 말하자니 그것도 서양의 것이고 그것도 트로트라고 일본식 발음을 빌려 쓰는 처지이다 보니 대답이 궁색해진 것이다. 그래서 나훈아 가수는 우리의 대중가요는 ‘아리랑’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앞으로 한국의 대중가요를 한국인들이 즐겨 듣고 불렀던 우리의 노래인 <아리랑>으로 하자는 것인데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트롯이나 트로트, 그 모두 우리의 대중가요를 지칭하는 말이 될 수 없다. <아리랑>은 1926년 나운규가 피지배민족의 설움을 상징적으로 그려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던 영화이다. 그 영화의 주제가가 <아리랑> 민요였고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의 뿌리가 되었다. 나훈아가 ‘아리랑’으로 한국대중가요를 지칭하겠다고 말 할 만하지 않은가?

다시 나의 애창곡 얘기로 들어가 나의 애창곡은 당연히 시대에 따라 변해 갔다. 대학엘 들어가 새내기 때 교가를 처음 배우고 과 신입생 환영회를 준비하며 과가를 배웠다. 연극영화학과의 노래인데 바로 백년설 가수의 <대지의 항구>(1941)라는 노래이다. 노래가 신나고 빠르게 부를 수 있는 곡이어서 응원곡처럼 부른 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불리어 지고 있다.

한참 전에 신입생 환영회가 있다고 하여 오랜만에 정든 교정을 찾았더니 역시나 후배들이 그 노래를 불렀다. 시대가 변했어도 후배들이 부르며 선후배간의 유대의식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올해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입학생이 65기 생이라고 한다. 지금은 연극학과와 영화학과가 나뉘어져 있다.

<대지의 항구>라는 반세기에 걸쳐 부르는 노래를 통해 반세기를 뛰어넘어 우리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2년제 서라벌예술대학이 있었기는 하지만 1959년 한국에서 4년제 대학으로 처음 창과를 하였으니 무려 65년 전의 일이다. 시대가 변해 신문방송학과, 연극과, 영화과가 하나로 통합된 ‘미디어 공연영상학과’라는 긴 이름의 학부가 되었다가 다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그사이 학과도 서울 흑석동의 캠퍼스에서 1980년에 안성으로의 이전이 결정되고 1980년 중반 안성으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20년이 넘어 다시 서울 캠퍼스로 올라오게 되니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한동안 지방대학으로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대학로에 공연영상센터를 마련한 선배들의 끝없는 노력과 박범훈 전 총장의 결단이 오늘 이런 결실을 가능케 하였다.

계속 얘기가 본론을 벗어나는데 노래라는 것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깊은 관련이 있는가 하는 또 하나의 반증이기도 하다. 이렇듯 <대지의 항구>는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동문 모두의 애창곡이다. 이 노래가 가진 서글픈 사연과 상관없이 부르면 신이 나는 노래이고 하나로 뭉치는 느낌이 강하다.

결론을 말한다면 나의 애창곡은 나훈아의 모든 노래이다. 얼마 전 동기생 기주봉 배우를 만나 둘이서 그의 노래 <사랑의 힘>을 흥겹게 불렀는데 우리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살아온 세대이다. 나훈아의 노래 중에서도 특히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는 나의 최고의 애창곡이다. 그 외 <모르고>, <모르리>도 뺄 수 없는 애창곡이다.

2007년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무대제에서 후배들의 애창곡 열창
▲ 2007년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무대제에서 후배들의 애창곡 열창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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