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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 스토리] 나의 홍콩영화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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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 스토리] 나의 홍콩영화 집착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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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아시아영화제 감독상, 남우주연상 수상작 「복수(보구)」
▲ 제16회 아시아영화제 감독상, 남우주연상 수상작 「복수(보구)」

나의 홍콩영화 사랑은 반세기를 넘어 섰다. 1967년 호금전 감독의 <방랑의 결투>를 보고 부터이다. 무협영화의 정수를 보여주며 현란한 색감부터 이색적인 소재, 정패패, 악화, 진홍열 등의 새로운 배우들... 무엇 하나 뺄 수 없는 인상적인 영화였다.

그리고 만난 왕우, 초교 주연의 장철 감독의 <외팔이> 시리즈는 우리에겐 생소했던 정통무협이었다. 왕우의 영화는 계속 개봉되었는데 한 편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나열 주연의 <철수무정>도 뺄 수 없다. 그리고 나온 영화가 장철 감독의 <복수>이다. 강대위, 적룡 콤비는 눈을 뗄 수 없는 매력덩어리 캐릭터였다. 이후 <권격>, <13인의 무사> 등 무협걸작이 쏟아졌다. 곡봉, 진성, 왕광유, 우마 등이 빛나는 조연을 맡았다.

<대폭군(관세음)>, <여마적>의 이려화(릴리화)는 당대 홍콩영화의 여걸이다. 그외 이청 주연의 <스잔나>, <화월 춘야> 등의 멜로영화가 한국 관객들을 강타했다. 그리고 하리리, 호연니, 초교, 탄니 티엔니(념니), 금비, 왕평, 이려려가 여러 영화에 등장하며 관객들을 설레게 했다. 한국영화, 서구영화 모두 상대가 되질 못했던 시절이다. 이른바 한국에서의 홍콩 뉴시네마 시대이다. 영화라면 어느 나라, 어떤 장르이던 좋아했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홍콩영화였다. 같은 동양권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영화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그런데 1973년 7월 27일, 진짜가 나타났다. 이소룡의 영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사람들은 뉴 스타, 뉴 액션에 열광했고 그 영향인 '이소룡 문화현상'은 적어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소룡, 한영걸, 전준, 석견, 묘가수, 의의의 등장 이후 홍금보, 성룡, 원표, 담도량 등 무술배우들의 향연은 끝이 없었다. 그리고 총으로 중무장한 이수현,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양조위, 주성치가 등장한다. 유가량, 이연걸, 견자단, 진국곤이 등장하여 홍콩 무술영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의 파트너로 모영, 양자경, 관지림, 장만옥, 왕조현, 임청하, 종초홍 등의 여배우가 보석같이 빛났다.

이렇듯 좋아하는 영화와 배우들이 즐비한 홍콩영화계이다. 내 어찌 집착을 버릴 수가 있을까? 혹시라도 무언가 건질게 없을까 홍콩을 비롯하여 대만, 중국, 미국을 다녔고 내 마음의 기념품인 영화의 비디오, DVD, 영화 책을 수집했다. 1997년 LA의 중화서국에서 <외팔이> 시리즈 비디오를 보고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30여 년 만에 보고 싶던 영화를 비디오로나마 볼 수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2005년 무협영화의 레전드인 왕우 인터뷰를 시작으로 2007년에는 강도, 곡봉, 나망, 양가인, 유가휘, 적룡 등 7인과 인터뷰를 했다. 최근에도 8차 이소룡 투어를 가졌고 앞으로도 제 집 드나들듯이 다닐 것이다. 머잖은 11월의 탄신 기념일 방문도 계획하고 있다. 집착을 넘어서 입원 수준이다. 나의 홍콩영화, 홍콩 사랑은 고칠 수 없는 병이다.

그날의 기록을 담아낸 졸저들을 오늘도 뒤적이며 그날들을 회고한다. 비록 그 시절이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날의 추억조차 빛이 바래지는 않는다. 나는 그날들을 기억하며 기꺼이 한국이소룡기념사업회에 내 여생을 바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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