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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270일간의 기록- 나와 촬영감독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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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270일간의 기록- 나와 촬영감독 ③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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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퇴임식 자리에 여러 촬영감독들이 참석하여 인사를 나누었다.
▲ 나의 퇴임식 자리에 여러 촬영감독들이 참석하여 인사를 나누었다.

EBS로 옮겨 만난 촬영감독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나는 영화감독을 하다가 왔기에 PD들과는 달리 무언가 색다른 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와 일하기를 기대했는데 그건 며칠 못 갔다. 이틀 만에 30분 다큐를 한 편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오밤중까지 촬영하는 상황이니 누가 좋아할까? 영화는 다큐멘터리해도 보통 촬영일 수가 10회 차를 넘어간다. 극영화도 최소 15회 차이던 시절이다. 그렇게 촬영해도 편집을 하면 쓸 그림이 부족하다.

나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교통상황이 지금보다 나으니 이곳저곳으로 장소 이동을 하며 그렇게 늦게까지 일하며 스태프들을 피곤하게 했다. 그래도 일을 즐기며 정면 돌파로 힘듦을 피하지 않으니 나를 이해해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야외촬영팀의 모두와 일을 했지만 역시 근성이 있는 이들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박영근 촬영감독은 나보다도 정년퇴임을 먼저 했던 팀 내 고참이었다. 그와 함께 <전통문화를 찾아서> 시리즈의 <한국의 고서> 편 촬영을 나갔다. 내게 방송 시스템을 알려주기 위해서 고참인 그가 나왔던 같다.

촬영에 대한 내 생각은 믿음으로 일궈진 팀 웍 우선이다. 나는 촬영 영상에 대해 믿음으로 일관했다. 정이나 부족한 장면이 생각되면 다시 주문하는 스타일이다. 장면을 가지고 “네가 옳네, 내가 옳네” 다투는 것은 작품 완성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영화계에서도 S촬영 감독의 고집이 워낙에 대단하여 감독 버전과 본인 버전을 따로 찍었다는 일화가 전해오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 그는 상대를 인정해주고 상대의 주문에 따라주는 좋은 촬영감독이다. 그와는 <효도우미 0700>을 촬영하며 많은 출장을 함께 했다.

내가 투입되면서 스튜디오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전통문화를 찾아서>를 촬영하였는데 이규택 감독과 초창기에 많이 일을 나갔다. <전통문화를 찾아서>는 아무렇게는 아니겠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림이 만들어지던 프로그램이다. 자연 그도 그림 욕심을 부려 많은 작품을 함께 했다. 방송사에 와서도 <살풀이춤>의 미학을 잊지 못해 다시 제작을 해보았는데 그는 살풀이춤을 촬영하다가 “동해안 바다를 배경으로 한 번 더 찍자.”고 까지 했다.

그의 욕심을 내가 충족시켜주지 못한 건 순전히 정해진 일정 때문이다. 이틀의 촬영 스케줄로는 어림없는 일인데 그런 신선한 자극이 내겐 오히려 힘이 되었다. 그는 미국 이민을 택해 일찌감치 방송사를 떠났다. 이즈음 그의 동기생들이 여럿 미국으로 갔던 시기이기도 하다.

전우삼 감독과는 <전통문화를 찾아서> 시리즈의 말미를 함께 하였다. 5년간을 만들며 유형의 문화뿐만이 아니라 정신문화도 다루기 시작했는데 <한국의 귀신>, <한오백년> 등을 촬영했다. 외암리 민속마을에서 날밤을 새우며 아랑 귀신 설화를 극화하여 촬영하였다. 당연히 힘든 작업인데 아무 군소리 없이 그림 만들기에 열중하였던 그와의 촬영이 엊그제만 같다.

정재호 감독은 자연다큐를 사랑하는 이다. 나와는 전방 155마일을 다니며 <DMZ> 등의 프로그램을 촬영했다. <전통문화를 찾아서> 촬영 때 점술가를 인터뷰 하였는데 “이번에 위험한 지역을 가는데 키 큰 사람과 함께 간다.”고 했는데 바로 키 큰 이가 바로 그이다. 그와는 <다큐 이사람> 등을 촬영했다.

이윤규 감독은 처음에는 정재호 감독의 촬영 조수로 만났지만 곧 입봉하여 나와 영상 절친이 되었다. 꽤나 터프한 듯 보이지만 영상은 섬세했고 나름의 영상미를 추구하며 최고를 추구했다. <다큐 이사람> 등을 오랫동안 함께 하며 내게는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는데 끈질긴 근성이 기억에 남는다. 함께 출장을 가장 많이 다녔던 감독이다.

그는 잘 근무하더니 어느 날 사업 바람이 불어 퇴직하고는 지금은 그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뛰어난 적응 능력으로 잘 살고 있는 카톡 사진을 보며 행복해하는 그답다는 생각을 하는데 역시 미국 가서도 촬영은 그의 일상인 듯 가끔 멋진 사진을 보내왔다.

박강순 감독은 <전통문화를 찾아서> 시리즈의 <풍수지리> 편을 맡아 아와 여러 곳을 출장 다녔다. 지창용, 백운비 등 당대 뛰어난 풍수지리가들과 함께 했던 출장이니 모두가 즐거웠다. 그 역시도 만나면 그때의 출장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현장에서 좀 더 만날 수 있었을 터인데 영상국장으로 가며 현장에서 만날 일은 없었다.

강한숲 감독은 2004년 7개국 출장을 함께 했다. 이름처럼 수더분한 이미지와 마음이 넓어서 함께 하는 나 역시도 마음이 편해진다. 이래저래 푸근한 그이다. 7개국 출장은 너무 나라가 많아 나중에는 총각인 박치대 감독이 출장을 교대했다.

정호균 감독은 나와 2007년 중국 출장을 함께 했다. 3만km 이동이라는 무지막지한 일정 속에서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잘 견뎌주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차타고 다음 촬영지를 찾아 먼 유랑길을 떠났는데 하루도 아니고 장장 67일 간이었다. 게다가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걱정이 되어서 “왜 술을 그렇게 마시냐?”고 스태프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잠이 안와서...”라고 순진무구한 답을 했던 말이 기억난다. 20여 년이 지나고 지금은 촬영팀의 수장으로 있다.

근성하면 서영호 감독을 뺄 수 없다. 자연다큐의 명장으로 그는 이미 소문 난 이다. 계속되는 출장에도 불구하고 좀 쉴 법도 하지만 휴일에도 산으로 들로 다니면 정사진을 찍어 자연도감을 만들 정도이니 그는 이미 일가견을 이룬 감독이다. 그와 <명의> 때 처음으로 만나 호흡을 맞추었다. 퇴임식장에 찾아와 인사를 나누던 그이다. EBS의 촬영감독 편은 다음 회에 계속된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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