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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왜, 지금 '박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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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왜, 지금 '박열'인가
  • 장영준 기자
  • 승인 2017.06.19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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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한국정경신문=장영준 기자] 일제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게 암울한 시기였다. 끝이 없는 터널에 갇힌 듯 줄곧 어두웠다. 하지만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어둠에 맞서 빛을 들고 터널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독립투사'라 부른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있었지만 '박열'이란 인물은 생소했다. 대략적인 정보를 알고난 후에도 그 생소함은 여전했다. 인생 자체가 너무 드라마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준익 감독이 '박열'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꾼이라면 충분히 욕심 낼만한 스토리를 그는 갖고 있었다.

박열은 3·1운동 당시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참여했다가 직접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좀 더 적극적인 항일 투쟁에 나선 박열은 아나키즘(무정부주의)에 빠져 평등을 주장했다. 제국주의에 분노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이념으로 내세운 그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에 직면했다.

1923년 일본 간토 지방(関東地方)에서 발생한 대지진은 일본인에게도 비극이었지만, 당시 조선인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일본 내각은 민란의 조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이후 계엄령이 선포되고 경찰 군대 자경단 등이 무고한 조선인 6천여명을 학살했다. 이른바 '간토대학살' 사건이었다.

이 무렵 박열은 '불령사'(불량한 사람들의 모임)를 조직해 활동 중이었다. 불령사는 1923년 4월경 박열과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가 한인 14명과 일본인 5명 등을 규합해 만든 사상단체다. 일본은 간토대학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불령선인(볼온하고 불량한 조선사람)으로 박열을 지목해 기소하기로 했다.

영화 '박열'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 '박열'은 바로 이 지점부터 시작된다. 박열은 자신을 이용해 간토대학살을 묻으려 하는 일본 내각의 계략을 파악하고 역공을 시작한다. 일본의 만행이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도록 스스로 황태자 암살 계획을 자백한다. 아내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사형까지 각오한 그는 공판을 진행하며 일본 정부를 향해, 그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천황을 향해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간다.

우리가 눈여겨 볼 점은 당시 박열의 나이다. 영화 속 박열의 나이는 22살, 동지이자 연인, 그리고 아내였던 후미코는 불과 21살이었다. 불편 부당한 현실을 향해 불만을 적극 표출했고, 자신이 가진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 불같은 청춘들. 어쩌면 영화는 94년이 지난 후인 지금의 청년들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취업난에 허덕여 신념을 잃고 방황하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말이다.

누구나 한 때는 가슴에 뜨거운 뭔가를 품고 있었다. 박열이 그랬듯, 언젠간 그 뜨거운 응어리를 확 터뜨려버리고 싶은 열망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 치여 그 응어리는 서서히 온도를 잃었다. 어느새 나이를 먹으며 청춘에서 멀어진 이들은 그 생생했던 가슴 속 열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 '박열'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꺼져가는 가슴 속 불꽃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9분. 오는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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