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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 스토리] 베이비 부머의 극장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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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 스토리] 베이비 부머의 극장 순례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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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허리우드 극장.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paigeflynn
▲ 1970년대 허리우드 극장.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paigeflynn

베이비부머란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전쟁 이후 출생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1955년생부터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 아래 실시된 가족계획 이전의 1963년생까지를 아우르는데 내가 바로 그 세대이다. 학교의 학급 수는 십여 반이 넘었고 학생 수는 70~80명이 보통이었다. 임신하면 무조건 나았기 때문인데 조국이 사라질 뻔했기에 위기의식을 공유했었기 때문이다.

나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아들을 성공시키고 싶어 고향인 해주를 떠나 인천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서울 용두동에서 뿌리를 내렸다. 용두동 옆의 왕십리는 내 뛰어놀던 고향으로 구석구석 모르는데 없이 돌아다녔다. 한양대가 왕십리의 끝자락에 교정을 만들고 큰 건물 몇 동이 들어서고 공대가 유명해졌다.

왕십리에 극장이 많은 게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광무극장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오랜 극장으로 이 극장을 무시로 다니며 영화란 영화는 뿌리를 뽑고자 했다. 영화를 보는 안목은 높아져 갔고 어느새 나의 공부방이 되었다. 인근의 동원극장도 나의 공부방이었다.

나의 극장 순례는 을지로 입구까지 넓혀져 계림극장, 그리고 을지로 3가의 국도극장, 파라마운트극장까지 머다 않고 다녔다. 이러니 공부는 언제 했나 싶은데 걱정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청량리 권역으로도 시대극장, 동일극장, 동일극장, 대왕극장을 두루 다녔다. 안 본 영화를 본 것일 텐데 그렇게나 신작들이 많았을까?

그때그때 못 본 영화를 하는 극장을 찾아다닌 것이다. 그러니 거의 모든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이런 극장 순례는 훗날 '한국영화 100년사' 시리즈를 집필한 자양분이 되었다. 신설동 권역으로는 동보극장, 노벨극장이 있었다. 동대문권역으로는 동대문극장, 한일극장까지 아, 세상은 넓고 극장은 많았다.

고등학교 때에는 대놓고 시내의 극장을 다녔다. 파고다극장은 단골극장이 되었다. 종로2가의 학원가를 수업 후에 다녔는데 학원 강의를 듣고는 극장으로 직행하였다. 이 극장은 아예 교복을 입고 입장해도 되는 극장이다. 이곳의 경찰은 할 일이 많아서인지 임검석은 항상 비어있었다.

다른 극장의 사정도 유사했는데 학생입장 불가영화가 거의 다였을 텐데 사복만 입으면 단속을 당하진 않았다. 1973년 피카디리극장에서 어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다음 프로 전단지가 놓여있었다. 몇 장을 들고 나와서 버스에서 읽어보았는데 이소룡의 <정무문> 전단지였다. "아, 한 번 봐야지" 했는데 공부(?)하느라 개봉일을 놓쳤다. 이 영화는 학교에서도 소문이 나며 나는 당장 달려가 보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새롭고 강력한 영화였다.

이 시기 거의 남는 시간이 없었던 게 극장 순례 때문이다. 이제 영화는 나의 벗이요, 내게는 종교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대학을 가까운 한양대로 다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전기대인 중앙대에 합격하며 멀리 강 건너 먼 길을 다녀야 했다. 명수대 극장은 새로운 출입처가 되었다.

그리고 남산의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개봉 안 된 신작들을 남들보다 먼저 보면서 영화는 나의 영원한 동반자로 자리를 굳혔다.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도 영화요, 훗날 EBS에서도 왜 영화 프로그램만 기획하느냐고 말을 들었다. 왜 그렇게 영화에 집착했을까? 하지 말란 말을 들으면 더 하고 싶은 나이에 영화는 나의 연인이었다. 그 첫사랑을 어찌 멀리할 수 있는가?

이래저래 나는 연극영화학과에 갈 수밖에 없었고 영화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방송인이 되어서도 영화 전문PD가 됐다. 그리고 2013년 『한국영화 100년사』를 발간하고 시리즈를 십여 권이나 집필했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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