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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 스토리] 내가 지목하는 안 의사 유해매장 추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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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 스토리] 내가 지목하는 안 의사 유해매장 추정지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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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영광 전 의원이 신현만 씨의 증언을 듣고 작성한 매장지 관련 그림
▲ 고 김영광 전 의원이 신현만 씨의 증언을 듣고 작성한 매장지 관련 그림

안 의사의 유해매장지로 추정하고 있는 중국 여순의 동산파 지역 감옥묘지는 직선거리로 500m이고 현재 도로 거리로는 약 1.2km이다. 주변에는 아파트 및 빌라들이 밀집되어 있다. 이 지역은 그동안 신현만, 이국성 증언자와 고 김영광 국회의원에 의해 계속 안 의사의 묘 추정지로 주장되어 왔으나 정작 발굴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고 신현만 씨는 1983년에 김영광 의원과 만나 중요한 증언을 남겼다. 그 증언을 토대로 그려진 지도와 이국성 씨의 증언은 일치했다. 그것은 반무충의 증언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감옥 끝에서 300m되는 산에 묻었다는 것이다. 이곳이 바로 샹양가 뒷산 동산파 지역이다.

김영광 전 의원은 이를 바탕으로 사진의 자료를 남긴 것이다. 신현만 씨는 형이 일러준 대로 원족(산놀이, 혹은 소풍)가서 안 의사의 묘를 참배했다. 일본인 검시의 고가 하쓰이치의 증언과도 일치되는 바로 그 지역이다. 이는 반무충이 1995년도에 고가 하쓰이치를 안내하며 확인한 결과이다.

보훈처는 지금도 이국성 씨를 불신임한다. 그는 명예회복을 원하고 있다. 이국성 씨 관련 보훈처 O순O 씨의 료녕성 보고서 조사는 『항일투사 리회영』의 배재수 작가도 시인했듯이 조사 불충분으로 왜곡된 것이다. 그의 DNA 분석결과 우당의 친족과 불일치된다고 하던 상황으로 해서 그는 보훈처에 사기꾼으로 호도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황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판단이다. 중국의 관련 공무원이나 기록은 지금이라도 재조사되어야 한다.

설령 위의 보훈처 조사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안중근 의사의 묘 추정지 증언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더구나 그곳은 이미 여러 명의 증언자 추정했던 바로 그 장소다. 당시 국가보훈처의 관계자들은 이곳을 부정하고 다른 지역을 발굴했었다. 그런데 이국성이란 생존자가 나타남으로 인해서 위기의식이라도 느꼈을까? 국가보훈처의 당시 조사는 총체적으로 난국이다.

이국성 씨의 부친은 1958년 이전에 이미 조양진 역에서 기차를 타고 심양 근처의 무순 전범감옥에 찾아가 당시 여순감옥장을 만났다고 한다. 그에게서 우당이 정치범으로 중범을 수용한 3층 13호실에 수감되었다고 들었다. 그 일본인 옥장은 종전 시 3일간에 걸쳐 문서를 태웠다고 증언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 때 안 의사 관련 문건도 모두 불태워졌을 것이다.

이국성 씨에게서 듣는 이야기는 진정성이 있고 적어도 소설이 아닌 것은 계속해서 들어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이국성 씨와 또 인터뷰를 했다. 아래의 지도는 여순일러감옥구지기념관의 근무자인 반무충 씨가 하얼빈 의거 동지인 유동하 의사의 조카인 김파(1944년생?) 씨에게 준 지도다. 이 지도를 고 김영광 전 의원이 건네받았다.

여순일러감옥구지기념관에 근무했던 반무충 씨의 지도
▲ 여순일러감옥구지기념관에 근무했던 반무충 씨의 지도

이충렬 씨는 1945년경 이 지역을 방문했었고 당시 목비가 있었다. 목비 상태는 안중근 글자중 '근'자가 지워져 안 보이는 상태다. 이는 1944년 이곳을 참배했던 신현만 씨의 증언과도 일치가 된다.

1958년 우당 이회영의 아들인 이충렬은 아들 이국성을 데리고 이곳을 찾아왔다. 이충렬은 농업에 종사했는데 1958년 당시에는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었던 때이다. 1960년에서 1962년까지는 소련에 차관 탕감을 식량으로 해서 힘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기림성 매화국 허와향(신학진 신촌촌)에 살고 있었는데 조양진 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아침에 대련역에 도착했고 여순 행 기차를 타고 1박 2일에 걸쳐 이곳을 방문했다.

그들은 여관에서 숙박하고 우당이 갇혀있던 여순감옥 3층 13호실을 방문했다. 당시 군인들이 경비를 하고 있었고 화장장까지 방문했는데 석비 20여개 정도가 옮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들 석비는 매장된 일본인들을 화장하며 이곳으로 모아놓은 석비다. 이 비들은 2000년대 초까지 보관되어 있었으나 2010년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모두 없어졌다. 근처의 화장장도 콩두부 공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가 지목하는 지역은 아파트 담장 공사를 하며 일부지역이 잘려져 나갔는데 공사장 인부들은 당시 유해 조각들이 나왔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지역을 발굴하면 유해(뼈)가 나올 확률이 아주 높다는 의견이다.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이곳이 안중근 의사의 매장지였다고 알고 있으니 여순 동산파 매장설은 익히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련만보에 실린 안 의사의 묘비 관련기사
▲ 대련만보에 실린 안 의사의 묘비 관련기사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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