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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안중근, 그의 길을 걷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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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안중근, 그의 길을 걷다 ①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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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크라스키노에는 안중근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러시아 크라스키노에는 안중근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방송되지는 않았는데 내가 제작을 하고 방송 안 된 것은 흔치 않은 경우이다. 그것은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기증을 목적으로 한 기록용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2011년 8월 안중근기념관의 여순 탐방을 기록한 내용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안 의사 관련 소논문을 제출해서 선발된 대학생 13명과 중고 교사를 포함하여 모두 41명으로 구성된 탐방단은 2011년이 7기째다.

2011년에도 전년도에 이어 롯데백화점이 협찬하여 행사가 진행되었다. 1인당 경비는 2백만 원이며 5,500여만 원을 롯데가 협찬하였다. 유사행사가 많이 있는데 학생들은 평소에 조금의 관심이 있다면 이런 행사를 통해 독립운동의 현장을 탐방할 수 있다.

아침에 8시에 인천공항에 집합하였으나 일기불순으로 비행기에서 한 시간이나 기다린 후 11시에 이륙해 두 시간 반 걸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 이곳 역시 부슬비 내리는 날씨다. 입국수속 후 통관하니 시차가 2시간 나는데 오후 4시다.

우리를 마중한 송지나 교수는 이곳 극동대 소속 교수다. 그녀와는 2004년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촬영 후 7년만의 만남이다. 공항은 마르쫌이란 인구 10만의 소도시 근처다. 이곳에서 40km를 달려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 2012년에 국제회의가 열린다고 도로공사 중인데 당시에는 비포장길이다.

블라디보스톡은 발해(해동성국)의 땅이다. 발해 멸망 후 이곳에 여진족이 16세기부터 거주했고 1895년 중국과 러시아의 조약 후 1861년 러시아령이 되었다.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 극동지역의 유일한 부동항인데 무역항으로 출발해 군항이 되었다.

강제 이주 전 한인집단거주지인 신한촌 지역의 기념비를 촬영 후 극동대학 한국학 대학을 방문했다. 안중근 기념비가 세워진 크라스키노는 예전에 ‘연추’라고 불리운 한인들의 거주지와 가깝다. 가는 길에 안중근기념비가 있어 촬영했다. 안 의사를 기리는 마음으로 이곳에 세워진 기념비는 한국어로만 되어 있어 러시아인들은 관심이 없다.

밤에는 안개가 심하게 끼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침에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해 크라스키노의 안 의사 단지혈맹비를 답사했다. 가는 길목의 중간 쉼터인 바바라쉬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화장실외에는 특이한 상황이 없는 시골일 뿐이다. 추운 겨울에는 살기에 부적합한 곳이지만 이곳도 여름에는 역시 과일들로 풍성하다.

한인 최초의 이주지인 지신허는 시간 관계상 들리지 못하고 지나쳤다. 외딴 곳에 가수 서태지가 세운 기념비가 떠오른다. 발해 노래를 불렀던 가수 서태지가 이곳에 세운 기념비는 당시 충격의 느낌이었다. 누구도 관심 없던 이곳에 구한말, 한인 최초의 한인이주비를 세운 서태지다.

이곳이 발해의 옛 영토이기에 그가 이곳에 기념비를 세웠을 것이다. 7년 전 이곳의 마을에서 한인들이 쓰던 연자방아와 우물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점심은 7년 전에 들렸던 이곳 양식당에서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똑 같은 메뉴에 모든 것이 똑 같다. 마치 어제 들린 집 같은 느낌이다. 시간이 정지되었다는 느낌이다.

안내를 맡았던 송지나 교수는 이곳에서 아쉬운 이별을 했다. 시간관계상 전망대 촬영도 접고 바로 국경으로 갔다. 오후 5시까지만 근무한다는 이곳 경비대가 수속을 안 해줄 수도 있다는 상황 때문인데 사실 가보니 긴 차 행렬이 늘어서 있었고 우리 뒤로는 차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이럴 바에야 전망대를 보고 왔어도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서너 시간을 기다려 러중국경지대는 통과했다. 그러나 다시 세관에 가서 짐 통과를 하고 중국 세관을 거쳐 카메라와 노트북 등을 신고하고 나오니 무려 6시간이나 소비했다. 이래서 사회주의 국가를 관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늦더라도 안중근 의사가 무장투쟁하며 들러 3일간 계셨던 권하촌의 초가집을 찾아갔다. 2010년과 달리 허술한 초가집은 곧 무너질 듯한 형상이다. 안내인도 이곳이 안 의사가 있었던 곳인지 확신이 안 선다는 말을 하여 나는 “증언도 중요한 증거다”라고 알려주었다. 이 초가집은 내가 만든 안중근 드라마에도 나오는 장소다. 꼭 국가기록에 의한 기록만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의 전언과 중언도 기록의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시간 관계상 급히 서둘러 봉오동 전투 현장을 찾았다. 이미 해가 기울었고 연락받은 공안들이 놀라 나타났다. 봉오동 전투 전적지는 이미 댐이 들어서 계곡은 물에 잠겼다. 늦더라도 이곳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예측 못하고 바쁜 일정을 짠 여행사도 문제다. 이곳의 놀부집에 도착해 늦은 저녁을 먹으니 점심 먹고 11시간 만이다. 식사 후 유경호텔에 투숙했다.

2011년 권하촌의 초가집, 지금은 허물어져 사라졌다
▲ 2011년 권하촌의 초가집, 지금은 허물어져 사라졌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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