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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 '대한국인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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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 '대한국인 안중근'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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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홍보관리소 제작의 '대한국인 안중근'에 출연한 안춘생 초대 독립기념관장
▲ 국군홍보관리소 제작의 '대한국인 안중근'에 출연한 안춘생 초대 독립기념관장

<대한국인 안중근>은1990년도 국방부 국군홍보관리소(현 국방홍보원) 제작의 40분 다큐이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드라마 타이즈한 다큐멘터리로 KBS에서 방송되었다. 지금부터 32년 전의 다큐라서 고인이 되신 여러 분들이 출연하였는데 안춘생 전 독립기념관장을 모시고 인터뷰를 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의용군 참모중장이 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동양평화교란과 조국 침탈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는 조국을 떠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힘든 세월을 보내며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기회를 찾는다. 드디어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를 시찰하고 그 경유지로 하얼빈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접한 안중근은 하늘이 준 이 기회를 놓치기 않겠노라 결심한다.

그는 브라우닝 권총을 품에 품고 1909년 10월 26일 아침 9시. 환영인파에 묻힌 노회한 일제의 영웅이지만 우리 민족의 침탈자요 중국과 아시아 동양평화의 교란자인 이토 히로부미에게 일격을 가한다.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군경에 체포되고 일본 경찰에 인도되어 일본인 미조부치 검사의 조사를 받은 후 결심공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불법 재판에 대해 항소하지 않고 의연히 죽음의 길을 택한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지바 도시치 등 주변 일본인들에게 감동과 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동양평화론 집필 중 의연하게 순국한다. <대한국인 안중근>은 우리에게 조국이란 무엇이고 왜 목숨을 바쳐야 하는지를 전해주는 젊은 영웅의 생생한 다큐멘터리이다.

당시를 회고해 보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국군홍보관리소 작가로 이 시나리오를 썼던 내게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안 감독, 빨리 들어오세요!” 긴급호출이 있었다. 충무로에서야 안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홍보관리소에서는 안 작가였던 나이다. 그곳엔 월급 감독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들어가서 보니 내가 쓴 시나리오 <대한국인 안중근>의 연출을 맡을 감독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국군홍보관리소는 제작 후 시사회가 엄격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잘못 만들면 소장 참석 시사회에서 혼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감독들은 시나리오 작업부터 보통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각본자인 내가 제작부의 강권에 못 이겨 연출까지 맡게 된 것이다. 물론 충무로에서 활동 중인 나에 대한 검증이 끝났기에 연락을 준 것이다. <대한국인 안중근>은 제목처럼 안 의사의 일대기를 영화화하며 난감하게 하는 장면이 있어 과연 홍보관리소 감독들이 마다할 만한 내용이었다. 작가야 쉽게 한 줄 쓸 수 있지만 그것을 영상화하려는 감독들의 고뇌야 미루어 짐작할 일이다.

나는 우선 안 의사의 의거현장인 하얼빈 역을 수색역에 꾸몄다. 지금 수색역에서야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러시아 군인들은 미군들을 데려다 촬영했다. 여순 감옥은 당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재단장을 준비 중이던 서대문 형무소에서 촬영했다. 밤 촬영 때 스산한 느낌은 비단 사형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역사의 현장에서의 촬영으로 분위기는 생생히 전달되었다.

극중 사형 당일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유묵을 지바간수에게 전해주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적국의 간수로서 “당신같이 훌륭한 분을 간수하게 되어 죄송합니다.”라는 지바 간수의 인사에 안 의사는 “당신은 당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고 나는 한국의병장으로 군인의 본분을 다한 것이다”라고 말해 지바 간수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유묵은 1980년 8월 23일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되어 보물 569호로 지정 되었다.

저예산이기에 제작은 한정적이었지만 자료화면 등을 적절하게 사용해 제작을 마치고 드디어 국군홍보관리소 소장 참석 하에 시사회를 가졌다. 적은 제작비로 대작을 찍어냈으니 반응이 궁금하였고 나 역시 시사회장 한 쪽에 앉았다. 다큐를 보는 내내 보좌관들은 연신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시사가 끝나고 소장이 “자, 말들 해봐요.” 하면 이야기할 내용들인 것이다.

나는 과연 무엇을 저렇게 적을까 궁금했는데, 시사가 끝나고 소장이 크레딧의 내 이름을 확인하고 나를 찾았다. 사람들은 못 보던 일이라 다음 상황을 주시하였으나 소장은 “수고 많았습니다”며 내게 격려의 악수를 청했다.

보좌관들이 들고 있던 수첩을 얼른 집어넣었음은 물론이고 박수 세례를 보냈다. 안 의사의 다큐를 만들게 된 것도 과분한데 박수까지 받으니 이런 것이 보람이구나 싶었다. 안중근 의사 역을 맡은 유영국 배우는 KBS에서 방영된 이 프로그램을 보고 “평생의 대역작”이라며 고마워했다.

방송 후 출연한 차기환 탤런트에게 여러 PD가 전화를 해서 “안태근이 누구냐?”고 물었다고 한다. 우연치 않게 만들었지만 인생길에서 필히 만날 수밖에 없었던 다큐가 아닐까? 촬영은 SBS로 옮겨간 김승호 감독이였고 조연출은 최형자, 제작부는 민정기 부장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나의 인생에 중요한 다큐이다.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를 시작하게 된 단초를 제공했고 이 때부터 안 의사의 유해 발굴 및 국내 봉환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는 영화계 10년을 마감하고 1991년 가을 부터 EBS에서 PD로 일하게 된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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