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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촬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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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촬영이야기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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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드라마 '우리 예절' 제작 현장에서
▲ 2000년, 드라마 '우리 예절' 제작 현장에서

촬영이란 참으로 재미있고 신나는 작업이다. 잘 짜여진 현장의 상황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촬영현장이나 준비과정에서나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이 제일 중요하다. 촬영의 준비과정은 여러 사람이 관여된 정교한 일이다. 일상적인 인터뷰 등의 섭외는 구성 단계에서 확정되면 주로 작가가 연락을 취한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캐스팅 PD와 장소헌팅 감독이 따로 있다. 그들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배우들의 스케줄을 파악하고 촬영의 명소를 외우고 있다. 섭외된 장소가 문제가 있을 시에는 대안장소가 있어야 한다. 물론 운 좋게 한 번에 섭외되는 경우도 있지만 수많은 방송사가 생기고 촬영이 일상화 된 지금은 거절당하기 십상이다.

중국 같은 경우는 10번 걸어야 한 번 통화된다는데 확답을 주는 건 또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다는 중국 코디의 말이다. 워낙 섭외가 더디어 물어보니 들은 답변이다. 왜 그럴까 싶은데 그 나라의 관습이라고나 할까. 일반적인 현상이라는데 그 나라에선 어떻게 섭외하고 프로그램을 제작할까 싶다.

여하튼 섭외가 되어 현장을 찾아가면 엉뚱한 얼굴로 촬영팀을 맞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인터뷰 시에도 분명히 질문의 요지를 전해 들었을 터인데 처음 듣는다는 얼굴이다. 이럴 때 작가에게 뭐라고 하는 PD는 바보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실수가 있기도 하지만 진실게임은 하나마나이다.

현장은 항상 기대대로 만은 아니다. 나도 인터뷰를 해보니 조명을 밝히자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래도 나름대로 정리를 하여 얘기하지만 언제나 아쉽기만 하다. 그런 방송을 보고 아는 이들이 인사하면 나도 쑥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인터뷰를 너무도 쉽게 해내시는 분도 계시는데 정말 존경스럽다. 언변이 좋다는 것도 타고난 복이다. 물론 많은 연습을 통해서 달변가가 된다. 장관이나 단체장이라도 준비 없이는 인터뷰가 쉽지 않은 것을 이미 경험한 바이다.

인터뷰 말고도 섭외된 장소를 찾아가면 여러 가지 상황이 벌어진다. 요즘은 너무 촬영이 많아져 인근의 주민들이 겪는 고통도 이해되는 바이다. 장소 허락 받기는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사례가 요구된다. 이런 상황을 피한다고 몰래 찍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중국의 경우 힘든 섭외를 피해 도둑촬영을 시도하다가는 봉변당한다. 중국의 문화유산인 천단에서의 일이다. 모 광고 제작사가 몰래 촬영을 시도하다가 카메라를 압수당하고 스태프들이 붙잡혀 한화 천만 원을 물기도 했다.

모든 것이 시계태엽처럼 물려 돌아가는 것이 촬영 현장이다. 그래서 사전준비는 철저할 수밖에 없다. 6하 원칙에 따라 촬영의 목적을 설명하고 스태프의 수를 밝히고 공문을 보내고 사전 점검을 다시 한다. 그래도 현장에 도착하면 긴장의 연속이다.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돌발 상황은 PD에게는 일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즐길만한 상황정도가 애교스러운 것이지 PD로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은 조용히 접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촬영은 신중해야 한다. 그 준비는 철저하고 명확해야 하며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항상 원칙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덧붙여 촬영 현장에서는 사람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일이 결코 우선이 되어선 안 된다. 12시면 점심을, 6시면 저녁을 꼭 먹도록 해야 하고 항상 안전이 최우선이다. 사고라도 생긴다면 그 모든 것은 PD의 책임이다. 책임문제를 떠나 혹시라도 생길 사고까지 미연에 방지하여야 하니 PD란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 일인가 싶다.

촬영을 하다가 사지로 떨어진 경험담 하나를 소개한다. 카메라 위치를 찾다가 북한산 절벽에서 물이끼를 밟고 10m 아래로 미끄러졌다. 놀란 오기환 탤런트의 외마디 비명을 들으며 “아, 이렇게 해서 사망 아니면 불구로구나”를 생각하며 불과 5,6초의 짧은 시간을 1분 이상으로 길게 느끼며 떨어졌다. 정말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물구덩이에 떨어져 꼼짝을 못하고 있다가 내가 움직일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며 몸을 움직일 때 조연출이 뛰어내려와 나를 일으켜 주었다. 다행히도 큰 부상은 피했다. 어쨌거나 촬영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귀가해 잠자리에 들었다. 하룻밤 자봐야 안다고 했는데 다행히 별 탈은 없었다. 이런 무용담은 보는 이나 겪는 이 모두에게 끔찍한 추억이다.

1975년에 첫 학생영화 <폭류>를 찍고 47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촬영 현장에 서 있다. 어찌 보면 행운아일 수도 있다. 그런 촬영현장은 내게 긴장감과 함께 나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1월에 촬영을 마친 <새빨간 거짓말>이 아직도 완성되지 않고 있다. 후반작업 마무리로 바쁜 연말이 되길 희망해본다. 촬영보다도 덜하겠지만 후반작업 역시도 힘들긴 매한가지이다. 영화제작의 전 과정에서 쉽지 않은 과정은 없다. 다음 회에는 나의 드라마 제작 스토리 몇 편을 소개해볼 요량이다.

참고로 나의 단편영화, 시나리오, 문화영화, 드라마의 필모그래피는 모두 80여 편에 이른다. 적지 않은 양인데 그 창작과정의 스토리는 각기가 한 권은 됨직하다. 원 없이 만들고 집필한 것이지만 아직도 창작에 목마름을 주체할 수가 없다. 시나리오야 개인 작업이니 해 마다 발표하지만 영화 투자자를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다.

EBS라는 조직을 떠나 밖으로 나오니 그 한 편 제작하기가 이리도 힘들다. 조직이라는 환경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그 밖은 한기가 도는 벌판이다. 그 바람과 마주선 나 개인에게는 모든 것이 힘겹다. 투자라는 큰 벽 앞에서 나아갈 길 없다는 표현이 적당할 듯하다. 뒤 돌아보니 그 많은 작품들을 정말로 용케도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다. 촬영이란 힘듦을 말하기에 보다는 너무도 그리운 현장이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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