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8 15:56 (일)
[안태근의 다큐세상] '270일 간의 기록' 그 의미
상태바
[안태근의 다큐세상] '270일 간의 기록' 그 의미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2.0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키나와에서 당시의 증언자를 인터뷰
▲ 오키나와에서 당시의 증언자를 인터뷰

『270일 간의 기록』은 2004년 EBS 광복절특집으로 기획되어 추석특집까지 160분간 3부작으로 제작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제작기이다. 처음 국민대 고갯길을 올라가 귀환사연구팀의 장석흥 교수를 만나 시작된 이 긴 여정은 나 혼자만의 경험으로 갖고 있기엔 귀중한 경험들이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제작 이후 글로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쓰였다.

이 글은 책으로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아쉽게도 출판사를 찾지 못했다. 혼자 간직하고 있던 이 글을 이번 공정일보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책의 역할이나 소중함은 더 말할 필요 없다.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도 중요하지만 그 다큐멘터리의 기록을 남기는 것 역시도 중요하고 제작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해외로 이주한 징용자, 징병자, 위안부 등 500만 여 명의 한인과 그들의 귀환사는 아직도 그 정확한 인원수가 밝혀지지 않았으며 따라서 총론적으로 다루어진 적이 없는 소재이다. 촬영은 3월부터 7월까지 8개국 취재를 거쳐 완성됐다.

다큐멘터리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쉬움만을 뒤로하고 무사히(?) 방송되었다. 방송을 보시고 우시며 전화했던 할머니, 작품이더라는 친구 한 화백의 격려 등 보신 많은 분들의 격려성 말씀도 있었지만 내게는 만족스럽지만은 않은 프로그램이다. 굴곡 많은 프로그램이라고 할까? 그래서 더욱 이 제작기를 정리해보고 싶었다.

첫 구성안에서부터 마지막 방송원고까지 그리고 촬영하며 이동 중에 틈틈이 메모한 촬영후기까지 모두 모아보니 꽤나 두툼한 분량이 되었다. 그중 상당부분을 빼고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으로 추려보았다. 이 책이 이와 같은 프로그램의 제작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엮게 했다.

자료조사는 270일간 내내 계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처음 수십 권 분량의 자료를 건네받아 정리 축약하여 초고를 쓰고 이후 계속 보완작업이 이루어졌다. 그 사이에 초고를 맡아 고생했던 전지애 작가가 떠나고 개작이 되어가며 많은 작가들이 왔다간 떠나고 AD마저 바뀌는 등 이 프로그램은 제목처럼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과 연관이라도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흐르는 강물 같은 상황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 기획안은 방송문화진흥회의 기획안 공모에서 채택되어 제작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오랜 글 친구 전진환 군이 참여하며 힘이 돼주었다. 그사이 자문을 해주셨던 국민대 교수님들과 정신문화연구원의 정혜경 박사, 서울시립대의 이연식 강사의 도움으로 프로그램은 진행되었다.

이 다큐멘터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국제사회에서의 기본적인 윤리를 깨고 타국을 강점하며 긴 세월 갖은 악행을 스스럼없이 저지른 일제이다. 그들은 지금도 잘못된 것을 뉘우치지 않고 왜 함께 전쟁에 나섰으면서 그러냐는 식이다. 일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극우세력들이 뉘우치지 않는 한 양국의 진정한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80여 일 간의 촬영, 지리한 강행군 속에 촬영 테입이 150시간에 이르고서야 촬영은 끝이 났다. 연일 계속된 출장 속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버티며 한 달 내내 편집에 매달렸다. 끊었던 담배와 술의 유혹이 엄습했지만 이 작품의 끝을 빨리 보고 싶은 욕구가 더 강렬했기에 물리칠 수 있었다.

방송은 제 날짜에 잘 나갔고 시간적 여유 속에 3부 마지막 편을 완성해 추석날 방송되었다. 그간 관심을 갖고 나를 인도해주신 국내의 연구진은 물론 멀리 해외에서까지 메일을 주고받으며 제작에 도움을 주신 연구자들의 덕이다. 그 분들의 열정이 아니었다면 이 프로그램은 아직 미완으로 남았을 것이다. 역사다큐는 사실자료로서 허구에서 벗어나는 과거의 증명이기 때문이다. 열악한 상황과 60년간의 세월의 무게 속에 변해버린 현장에서 몸을 아끼지 않으신 현지의 연구진 및 코디까지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진심으로 드린다.

글에서 한인, 조선인이 혼재되어 나오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는 대한제국의 후손으로 줄여서 한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도 대한국인이라고 유묵을 남겼다. 일본인들이 한인을 비하하고 차별하며 부르던 조선인이라는 말을 지금도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조센징, 조선인이라는 말은 일제가 한국인을 비하하며 지칭하던 말이다. 이것을 지금 우리가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단 당시 기록으로 남아있는 「관동대진재조선인희생자추모비」, 「조선인 명부」, 『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 등은 고유명사 기록이기에 그대로 사용하였다. 다음 회부터 『270일간의 기록』은 중국, 러시아 편으로 이어진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