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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시련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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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시련 ③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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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데뷔작이 되었으면 했던 '산다는 것'
▲ 감독 데뷔작이 되었으면 했던 '산다는 것'

글로벌 스타인 '이소룡과 강대위의 시련'이란 글을 쓰다 보니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한 대스타들도 겪는 인생의 시련이 왜 나라고 없겠는가? 한 때는 시험마다 떨어진 적이 없어 자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생살이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감독 데뷔를 하겠다고 야심차게 집필한 <산다는 것>을 현진영화사에 제출했으나 연락을 받지 못했다. 화가 나서 사장과 싸워볼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에 돈 벌어 줄 시나리오라면 퇴짜를 맞았을까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중앙대를 졸업하고 충무로 영화판에 나가서 겪은 5년간의 일은 기다림의 연속으로 하는 작품이 거의가 촬영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고 영화 일에 대한 회의감까지 갖게 되었다. 그리고 1986년 드디어 다큐멘터리 <한국의 춤 살풀이>로 감독 데뷔를 하였다. 금관상 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 공륜의 심의를 필했기에 공식 데뷔작이 되었다.

그 이전에도 수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어 새삼 감독 데뷔라고 하기도 뭣하지만 <한국의 춤 살풀이>는 공식적인 심의 기록이 남아있는 나의 데뷔작이다. 그러고도 이름이 알려진 것이 아니고 형편이 핀 것은 아니다. 우연히 세방현상소에서 만난 권순재 선배의 제안으로 작품을 하기 위해 1987년 중앙영화사에 입사해 첫 월급 45만 원을 받았다.

이전에 수입은 작품 당 계약으로 소액을 받았기에 월급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홍보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다가 중앙영화사를 퇴사하여 프리랜서로 더 많은 일을 하였다. 젊을 때라 의욕이 충만하여 아주 열심히 일했다. 만드는 영화들이 영화제에서 수상하니 EBS와 연결되어 선배의 부름으로 EBS PD로 입사를 하였다. 대학 졸업 후 10년 만인데 나의 긴 시련기이다.

이후 EBS에서의 24년은 내 생애 중에서 매우 바쁜 시기였다. 인생의 황금기를 프로그램 제작으로 보낸 것이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1,000여 편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2013년 정년퇴직을 하고 호남대 경영대학 문화산업경영학과 교수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2016년 극영화 <킬더맨>으로 감독의 기회가 왔다. 시나리오 작가 선배인 유OO 작가의 제안이었는데 그는 지금까지 몇 년째 투자자를 찾고 있는데 불발이다. 그것이 두 번째 시련기이다. 이것 말고도 여러 기회라고 생각되는 제안이 들어왔지만 모두가 얼토당토않은 기획이며 사기성이 농후하다. 극영화인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 <유리벽> 등을 준비했지만 아무것도 된 것은 없다.

사기라는 것은 자신이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능력자인양 허세부리는 결과이다. 목사님이나 스님, 그리고 돈 많은 사모님의 말은 투자에 관한 한 절대 믿을 일이 아니다. 통장에 제 돈 없이 벌리는 사업이 될 리 없다. 영화라는 것은 전문가 집단이 하는 일이다. 결코 섣부른 배짱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이들을 만나는 순간 낭패는 정해진 코스이다.

그런가 하면 대외적으로 인정되는 분명한 단체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OOOO협의회가 제작하는 <개벽을 부르는 소리와 춤>은 고료를 받고 시나리오 탈고가 되었지만 종무소식이다. 임원진이 바뀌어서라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시스템이 갖추어진 EBS에서 활동하던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EBS라는 조직을 나와서 한 편을 한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를 실감했다.

심지어 다들 쉽게(?) 받는 단편영화 제작 지원조차도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선정되지 않았다. 나로서는 회심의 역작인 <편집의 귀재>의 사례인데 “심사위원을 해야 할 이가 제작지원 신청을 해서일까”라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아는 라인을 통해 청탁을 해볼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그건 아니다. 인생에 오점 찍을 일이 없다고 제작을 포기해버렸다. 이렇게 퇴임 이후 제대로 된 한 편을 만들기가 이렇게 힘든 일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일단 큰돈이 들지 않는 유튜브 영상은 3개의 채널을 만들어 수십 편이 업로드 되었다. 그러나 조회 수는 미진하다.

2021년 서울필름아카데미 원장으로 재임하며 2022년에 촬영을 마친 두 편의 영화 역시도 아직도 후반작업 중이다. 2021년부터 촬영한 다큐 <새빨간 거짓말>과 <장편독립영화 만들기>는 무슨 대작인지 3년이 지난 지금도 가편집 단계이다. 진행이 너무도 느린 것은 제작비 없이 초저예산으로 제작하기 때문이다. 크랭크 인한지 3년 차인데 과연 제작을 완료하여 개봉될 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그저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는 중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나보다 더한 시련을 겪는 이는 부지기수이다. 그래도 나는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까지 하였으니 그나마 나은 사정일 수도 있지만 내 스스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련기이다. 시련은 성공의 발판인 것은 틀림없는데 더 큰 시련이 없기를 바라며 이런 업종에 종사하는 모두가 존경스러운 마음이다.

믿고 운명에 목매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을 알기에 인간은 노력을 하는 것인데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인간의 삶이다. 그러나 내 자식이나 젊은이들에게는 주어진 결과에 만족하되 더 큰 이상을 꿈꾸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나이 들어서는 그것마저도 쉽지 않고 스스로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면 편하고 주어진 삶에 적응해 편안한 노후를 보내라고 친구들에게는 말한다. 역대 인생 선배들이 했던 말이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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