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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네 가지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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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네 가지 사업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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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바쁜 와중에 「경기예술」지 기자로 활동했다.
▲ 2020년 바쁜 와중에 「경기예술」지 기자로 활동했다.

어떤 일을 하면서 누구는 추억을 만들고 누구는 역사를 만든다. 그런 추억과 역사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일이란 기획하고 실천하기까지 먼 길을 가는 과정이다. 일을 하다보면 선배나 친구, 그리고 후배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한 배를 타며 결실을 이뤄나간다. 그 과정에서 낙오자가 나오기도 하는데 사람의 일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일의 성과는 일을 책임진 이들이 어떻게 견뎌내며 나가느냐가 문제다. 중심을 잃지 않고 한 길로 매진하다보면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가 문제이지 결국은 그 꿈을 이뤄낸다. 그것이 인생살이다. 그러한 꿈을 꾸고, 희망을 안고 우리는 그것을 이뤄내는 것이다. 인생은 노력하는 자의 열망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것이 인생살이다.

구경꾼들로서는 대단하다는 말 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대단하다는 말은 영원한 방관자의 말이다. 참여하며 함께 겪지를 않고 바라만 보다보니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배를 탄 동지들이라면 느낌이 다르다. 우리 모두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인생길이란 먼 길을 가며 기회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일을 만난다면 소극적인 구경꾼으로 남기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참여자가 되길 바란다. 나는 지금 두 가지의 사업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 ‘한국이소룡기념사업회’와 ‘안중근의사뼈대찾기사업회’가 그것이다.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의 임원들은 평소부터 알고지낸 지인들도 있지만 이 사업을 알고 도와주겠다고 나선 분들이다.

전화나 메일을 드려도 답신이 없는 분들이 대다수이지만 우리 사업에 호응하신 분들은 이 일을 함께 하기로 굳게 약속하신 분들로 든든한 버팀목이다. 단순한 추억이 아닌 역사를 이뤄내기로 하신 분들이 우리와 함께 하니 우리의 사업도 머지않아 가시화되고 그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업이라 하면 부가가치를 창출해 수익을 발생시키는 일을 생각하게 되는데 내가 했던 사업은 그 반대로 돈을 쓰는 사업이다. 애초부터 수익을 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한 사업이 아니기에 오히려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를 느낀다.

그 첫 번째가 14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한국이소룡기념사업회이다. 2010년 11월 27일 첫 세미나를 시작해 2022년 12월 세미나는 끝냈지만 아직도 사업회 자체는 존속하며 차후 사업을 도모하고 있다. 미련을 못 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세미나를 접는다고 사업회 자체까지 안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작년 말로 다른 사업회 세미나도 모두 중단된 상태이지만 사업회 자체는 모두 존속하고 있다. 아직은 할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고 힘들다고 놓아버리기에는 아직도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업이 ‘한국영화100사연구회’이다.2013년 4월 28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발족 세미나를 개최하여 발제 김수남 “한국영화역사 연구의 필요성” 발제가 있었다.

이 세미나는 나의 졸저 2013년 4월의 『한국영화 100년사』 출간을 기념하며 더 큰 계획을 이루고자 발족시킨 것이다. 더 큰 계획이라 하면 『한중일영화 100년사』를 비롯하여 장차 『세계영화 100년사』까지를 집필해보고 싶은 원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합작영화 100년사』, 『한중일영화 100년사』, 『한국영화 100년사 일제강점기』를 출간하였고 목하 『한국무예영화 100년사』, 『세계영화 100년사』를 기획 중에 있다. 내가 생각해도 불가능에 도전이라 할 수 있지만 어쨌든 내 필생의 작업이다. 그러니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발족은 당연한 것이고 지금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가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이다. 이것이야 말로 현재로는 난공불락이다. 이렇게 꼬인 일이 있을까 싶은데 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지로 누구나 알고 있는 중국의 여순감옥의 수인(죄인)묘지를 아직도 발굴 모사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지를 방송 사상 최초로 방송했지만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도 발굴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무능한 후손이 있을까?

상암동의 한국영상자료원 극장을 대관하여 ‘이소룡 세미나’를 시작하고 계속해서 ‘한국영화 100년사’ 세미나 후에2014년 9월 30일 제1회 ‘안중근 세미나’를 3부에 걸쳐 가졌다. 제1회 안중근 세미나에서는 내가 ‘안중근 의사의 시대정신’을 발제했다. 2022년 4월 30일, 제72회 온라인 세미나로 ‘다큐 <안중근 의사의 포토그래피> 시사 및 해설’ 이후 참석자가 없어서 잠정 휴지기를 갖고 있다.

안중근 의사가 우리에게서 멀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는데 나머지 모임도 마찬가지이다. 잊혀서는 안되고 안태근만이 할 일은 아니지만 누구도 하지 않기에 하고 있을 뿐이다. 이 세 사업회는 네이버 카페에서 계속 활동 중이다. 내가 죽기 전까지는 계속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지막 네 번째가 한국다큐멘터리학회이다. 학회 태동 때부터 등기이사로 활동하였지만 전 회장으로부터 긴급 SOS를 받아 떠맡듯 맡게 된 것인데 일을 줄여야 할 상황에서도 임기 2년차이다. 올해 말에는 신임 회장을 선출하여 인계를 할 예정이다. 일을 줄여야 하는 시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내게 충고한다. “일을 줄여라!” 혹은 “돈 벌 궁리를 하면 재벌됐을 텐데...” 모두 진정성 있는 충고들인데 나를 아끼고 내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모두가 계획된 일이 아니고 흡사 거대한 물줄기를 안고 돌아가는 물레방아 같은 일이었다. 내게 어느 날 불현 듯 다가온 그 일들을 마다할 수 없었다. 그저 안고 돌아가는 물레방아 인생이라는 느낌이다.

물론 하고 안하고는 나의 선택이었지만 그 모두 외면할 수 없었기에 내 인생에 의미 있는 역사를 남긴 것이다. 이 일들을 마다하지 못한 내 선택인데 보상 여부를 떠나 내 인생 후회는 없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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