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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시련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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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시련 ②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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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히 다가온 내 인생의 파도는 결코 시련일 수 없다.
▲ 잔잔히 다가온 내 인생의 파도는 결코 시련일 수 없다.

EBS 시절은 내겐 꿈과도 같은 전성기였다. 독립영화 감독 때와 달리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을 실컷 만들 수 있는데 월급까지 받는다면 최상이 아닌가? 제작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고 진행비까지 주니 신이 나서 제작을 하였다. 작가는 보통 두 팀을 두고 바쁘게 제작하다보니 어느새 연출 편수가 천 편을 상회했다. EBS PD라고 모두가 같은 것은 아니고 내가 특별했다.

EBS를 퇴임하고 밖으로 나오니 다시 독립영화 감독 신세가 되었다. 많은 영화들의 시나리오를 쓰고 투자자 잡기를 고대했지만 결과는 제로이다. 미 제작된 시나리오만 십 여 편이다. EBS를 퇴임하고 플러스 한 편 만들기가 이리도 어려울 줄은 미처 몰랐다. 프로덕션을 만들어 본격 제작에 나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호남대 교수 시절에 했지만 그건 바로 포기했다. 갑의 입장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는데 자신이 없었다. 다 배부른 말인데 제작에 대한 집착을 끊을 수 없었다.

내가 제작비를 대고 만들 수는 있겠지만 이미 야생의 생존법을 잃어버린 나는 그저 투자자를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제작에 대한 집념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스스로 받고 있다. 주변에 나 같은 신세 푸념을 하는 이들은 없다. 그저 순응하며 살뿐이다.

2021년에 서울필름아카데미 원장을 맡으며 학생들과 함께 다큐영화 두 편을 찍게 되었다.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여 그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 촬영을 마쳤는데 2022년 초의 일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후반작업은 지지부진하기 그지없다. 가편집을 하는데 1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지금은 포기 일보 직전이다. 편집자가 이 핑계 저 핑계로 일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는데 모두가 예산의 문제이다. 어렵게 촬영을 마쳤는데 예기치 못한 상황이다.

2023년 올해 예기치 않게 담석 수술을 받게 되었다. 나로서는 <명의>를 제작하며 수술실 촬영을 위해 병원 출입을 하였는데 내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빠진 체중은 늘지 않는다. 나이 들어 빠진 체중은 회복이 느리다고 한다. 그러나 사는데 지장은 없고 다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건강이야기가 나왔으니 나는 60세가 될 때까지는 군대에 재입대해도 되겠다며 아주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후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기니 건강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하루에 3시간을 투자해 쉼 없이 운동을 해왔다. 당뇨 수치를 낮추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운동 자체가 즐겁다. 운동은 지금의 건강 때문이 아니라 10년 후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는데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병마와 친구하며 살 나이가 된 것이다.

건강은 병마와 친구하며 살면 되지만 어려운 건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남부끄러워 말 못하는 일들이 내게 왜 없겠는가? 시련은 일에서만 겪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사람들과의 시련이 생겨났다. 예기치 않게 되는 잘못된 만남은 삶에 자괴감을 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반추를 해보면 별 것도 아닌 것인데 시간이 흐르며 봉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것마저도 모두 내 탓으로 돌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정도에서의 시련이 차라리 작은 시련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가족 외의 사람들이라면 안 만나면 되지만 가족이라면 이건 대략 난감하다. 과거 어머니와 갈등이 많았던 편인데 이제는 대세에 지장이 없다면 무조건 순응하고 어머니의 뜻을 따른다. 윗분에게야 이러하지만 자식들 문제라면 난공불락이다. 더 이상의 방법이 보이지 않으면 나로서도 방법이 없다.

이 것 역시도 내 업보라고 생각하며 잊고 살고 있다. 굳이 들춰내 속상할 필요가 없다. 정 속상하면 내 오랜 벗인 K군에게 하소연하거나 글벗인 전 작가에게 자문을 구한다. 위로가 되는 벗들이 있기에 내 삶은 건강성을 유지하고 있다. 정 해결책이 안보이면 내 인생의 멘토들을 생각해본다. 그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 겪고 있는 시련들이 끝이 아님을 안다. 그래도 웃으며 여유를 가져본다. 얼마 전 가진 제14회 브루스리데이 행사에도 귀인이 나타나서 나를 도와주었다. 하늘에 있는 이소룡 사부의 배려와 보살핌이 분명함을 이미 여러 번 느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 우리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참고 버티고 견디어내면 분명히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생각이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주었다. 내 삶이 내 생각과 달리 가더라도 그 또한 순응해야 할 일이다. 잔잔히 다가온 내 인생의 파도는 결코 시련일 수 없다. 내 인생에 후회는 없다.

지금도 맡고 있는 5개의 모임의 장도 곧 넘기고자 한다. 나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는가? 좋은 사람들을 찾아 넘기며 딱 좋을 터인데 역시나 쉽지는 않다. 역시 인생살이는 쉽지 않아, 내 뜻대로 만은 안되지만 그것 역시도 세상사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생각해본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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