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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자서전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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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자서전 쓰기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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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사학연금'지에서 나를 취재했다. 사진출처=사학연금
▲ 2022년 '사학연금'지에서 나를 취재했다. 사진출처=사학연금

나이도 안 찬 내가 어떻게 나의 일대기인 자서전을 쓰게 됐을까? 작년 5월 26일 신일룡 선배가 돌아가시고 그의 장례식장에서 그의 평전을 쓰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두 달여 올인하여 그의 이야기를 한국공정일보에 연재했다. 그러고도 책 한권 분량이 될 이야기를 써서 마무리했다. 그런데 미처 몰랐던 사실은 아는 이의 평전을 쓴다는 것은 깊은 우울증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책 한 권 분량을 완성하니 우울증이 몰려왔다. 아는 이의 일생을 돌아보며 쓰는 글이 가슴에 깊은 슬픔을 남기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나의 고향 및 조상이야기였다. 내 이야기를 쓰며 우울증을 잊어버리려 한 것이다. 글쓰기는 나의 일이고 이미 서머리(summary)를 해둔 상태이기에 쓰는데 별 무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쉽게 쓰는 것은 아니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글쓰기는 이렇듯 정성을 요하는 일이다.

첫 회를 나의 고향 왕십리에 대해 쓰고 우리 조상들을 이야기하며 원적지인 황해도 해주에 대해 들은 바를 써 내려 갔다.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를 쓰다 보니 관련되신 분들과 인터뷰도 하면서 당대를 기록하게 되었는데 바로 한국전쟁 스토리이다.

북쪽 고향을 등진 이들은 친북 성향이 아닐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터인데 고향이 그쪽인 분들일수록 공산주의를 철저히 혐오한다. 그들의 허구성을 잘 알고 직접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부모님께 영향을 받은 반공주의자이다.

나의 가족사를 마치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OO시대'로 하여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반추하였다. 그게 80회 분량이었다. 여기서 끝을 내려고 했는데 나의 스토리의 하이라이트는 나의 영상 제작기이다. 학창시절 단편영화 만들기 및 독립영화 만들기, 그리고 EBS 입사 후 프로그램 만든 것까지 1,100여 편에 이르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까?

써도 써도 끝이 안보이는 대장정에 들어섰다. 약 200회까지 연재를 하고 끝이 났는데 관련된 인물 소개가 빠질 수 없었다. 나와 함께 일했던 작가, 조감독, 촬영감독 이야기를 쓰고 나의 벗, 멘토 이야기까지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그리고 내가 회장을 맡아 해온 여러 일들을 소개하는데 한국이소룡기념사업회,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한국다큐멘터리학회, 그리고 끼사랑산악회까지를 모두 소개하니 량은 어마어마해졌다. 그래도 끝이 나지 않는 게 관련된 인물 소개였다. 기록이 있는 분들을 모두 소개하였다.

이런 글쓰기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산악회원들의 이야기는 산행을 하며 들은 이야기를 카페에 정리해두었기에 글쓰기가 가능한 일이다. 더욱 신중한 글쓰기를 위해 미리 당사자들과 전화 인터뷰를 하거나 글 읽기를 부탁드려 검수를 받았다.

나의 일 중에서 집필 이야기를 뺄 수 없다. 내가 저술한 38권의 책 중에서 24권을 소개했다. 그리고 소개 못한 처가, 사촌들 이야기를 쓰고 글을 마무리 지었다. 이 글들은 나의 삶을 자랑하고자 함은 아닌데 쓰다 보니 그렇게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기록일 뿐이다. 아울러 밝히는 것은 후손들이 읽으며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고 자기 반성의 의미를 두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하며 여러 가지가 떠올랐는데 유쾌한 사진첩 보기라고 할 수 있다. 나로서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온 내게 주는 선물이라고 볼 수 있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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