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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연극영화학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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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연극영화학과 이야기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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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중앙대 캠퍼스에서 촬영 중
▲ 1980년 중앙대 캠퍼스에서 촬영 중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연극영화학과 이야기이다. 연영과는 지금은 연극학과, 영화학과로 나눠지기도 하고 영상학과, 방송학과, 방송연예학과, 뮤지컬학과, 연기예술학과, 미디어영상학과 등으로 이름으로 다양하게 바뀌었지만 변함없는 것은 높은 경쟁률로 인기가 변함없다는 것이다.

이 땅에 최초의 연극영화학과는 서라벌 예술대학에 생겼다. 지금은 없어진 대학이지만 한국전쟁 후 창과하여 수많은 연기자, 연출자들이 이 학교에서 배출됐다. 김성원, 이묵원, 김경애, 선우용녀, 민욱, 한인수, 김병조 등의 탤런트, 희극인을 비롯하여 많은 영화감독들이 배출됐다. 교수진으로는 한국영화 초창기의 안종화 감독을 비롯하여 이응우, 최재복 교수 등이 재직했다.

서라벌예대 문창과 출신으로는 김주영, 유현종 등의 소설가 들이 배출됐다. 전쟁 직후 대중예술 지망생들이 갈 수 있는 대학이라고는 서라벌예술대학이 유일했었다. 그 후 중앙대에 4년제 대학으로는 중앙대에 최초로 연극영화학과가 생겼다. 당시의 교수진으로는 김정옥, 양광남, 정원지 교수 등이 있었고 나이 차가 별로 나지 않는 제자들과 함께 새 역사를 만들었다.

그렇게 배출된 1기생으로는 추송웅 배우, 박근형, 양영준, 최정훈 탈렌트, 박태원 영화감독, 맹만재, 김갑주, 이해욱 KBS PD 등이 있다. 당시 연극영화학과 정원은 30명인데 200여 명이 청강생으로 더 들어와 학교의 수입을 올리던 시절이기도 하다. 이런 인원은 1970년대 초까지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같이 수업을 들으며 청강생이 누군지 알지는 못했다. 그들은 똑 같이 수업료 내고 같이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았지만 졸업장 대신에 수료증을 받았다. 1970년대까지 연극영화학과는 중앙대를 비롯하여 한양대, 동국대, 서라벌예대, 서울예전 뿐이었다. 1980년대 들어서 서울을 벗어나 청주대에 연극영화과가 생겨났다. 지금은 유사학과를 포함해 전국에 최소 50여 개 이상의 대학에 관련학과가 있다.(시중의 연극영화학과 입시안내서 참고)

한 학교에서 40명 정원 중 반만 졸업한다고 해도 일 년이면 최소한 1,000명이 졸업한다. 중퇴한 학생들도 현업에 종사한다고 보면 그 이상이 배출되는 셈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연극영화학과는 인기였다. 중앙대가 1959년에 창과 하였으니 이제 어느덧 64년의 긴 역사를 갖게 된다.

서라벌대학은 먼저 생기기는 하였지만 1974년에 중앙대에 병합되어 유지되어 오다가 몇 년 후 중앙대로 통합되었다. 한양대나 동국대는 중앙대보다 일 년 늦은 1960년에 창과 한다. 고등학교에도 연극영화학과 생겼으니 최초의 영화학교는 신필름이 세운 안양영화예술학교이다. 당시는 학력인정을 받지 못하는 전수학교였지만 계원예고가 생기며 정규 고교과정에 연극영화학과가 생겼다. 지금은 애니메이션 고교까지 생겨나 고교과정에서도 전문과정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청소년영화제 등에서 1980년대 초반부터 수상하는 등 우수한 기량을 보여주었다.

지금이야 대학 연영과 면접시험 때 보면 실습영화 한 편 안 만들어 본 학생이 없을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지만 반세기 전 연영과 지망생들은 집안의 반대와도 싸워야 했다. 당시 연영과 학생들은 딴따라라는 오명을 쓰고 편견과 싸우며 고군분투하였는데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딴따라라는 말은 의성어인데 악단들의 연주소리에서 나온 말이다. 연예계 사람들을 비하시켜 부르는 말이 되었는데 연영과 출신들이 연예계 진출이 많으므로 시기 반, 농담 반으로 딴따라라고 불렀다. 그러다 보니 연영과 학생들을 껄렁하게 보는 이들이 딴따라라고 불렀었다.

모든 학생들이 다 그런 건 아닌데 유독 연영과 학생들을 이렇게 부른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학생들에게 오는 편지의 상당량이 수신인이 없는 편지였다. 그만큼 가짜 학생들이 많았다는 예인데, 좀 끼 있다는 친구들은 모두 연영과 학생을 사칭하고 다녔다는 얘기이다.

연영과 시험이라도 보고 떨어진 학생이 사칭하는 것은 그래도 좀 나은데 아무 연관 없는 학생들까지 연영과를 팔고 다닌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알려진 중앙대 학생을 사칭하였으니 그렇게 많은 수신인 없는 편지가 학과 사무실에 넘쳐났던 것이다. 지금도 수백 대 일의 치열한 경쟁률을 거쳐야 하는 연영과는 반세기에 걸쳐 변함없는 인기학과이다.

바야흐로 연영과 전성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중앙대의 경우 영화학과는 예대 수석을 도맡아 하는 최고의 학과로 꼽혔다. 한때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신문방송학과와 통합되어 미디어공연영상학부라는 새로운 단과대학으로 출발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연극영화학과의 변천도 변화무쌍하다.

신필름 부설 안양영화예술학교 교문의 명판
▲ 신필름 부설 안양영화예술학교 교문의 명판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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