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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전석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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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전석주 감독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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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서초구 우면산 산행에서 전석주 감독
▲  2008년 서초구 우면산 산행에서 전석주 감독

전석주 감독은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3기생이다. 1943년생인데 학교 졸업 후부터 문화영화감독으로 삶을 사셨다. 당시에도 극영화 하기는 생활 보장이 안 되어 국립영화제작소 출신의 양종해씨가 만든 문화영화사인 서울문화와 김학수 감독이 만든 삼진영화사에서 문화영화 감독을 시작했다.

문화영화란 말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로 극영화가 아닌 영화들의 총칭으로 다큐멘터리를 포함하여 홍보영화와 단편, 중편의 교육용드라마까지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1960년대 당시에는 TV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이 활발치 않았었고 각 문화영화제작사들의 각 지방의 도정영화 및 각 시가 제작하는 시정영화 제작이 많았었고 국가의 주요 홍보영화도 제작하던 때였다.

지금도 홍보영화 제작이 많지만 당시에는 필름으로 만들어내던 때였는데도 제작 편수가 나름대로 많았다. 김학수 감독이 만든 <한국의 중공업>은 와이드렌즈를 사용하여 웅장한 화면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온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한다. 그런 김학수 감독도 영화사 운영에는 아마추어였고 영화감독으로서만 프로였다.

다른 문화영화사들이라고 형편이 나을 리는 없었다. 워낙에 적은 예산으로 제작을 했던 시절이다. 필름을 아껴쓰며 만들어야 했는데 상식적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이어야 했고 상투적인 기법으로 만들어야 잘 만들었다고 했던 시절이다.

그 시절 국립영화제작소는 한국 다큐를 대표하는 국가기관이었는데 소속 감독들은 <리버티뉴스>를 만들며 기량을 키운 곳이다. 이곳에서 만들어낸 다큐멘터리들은 아시아영화제 비극영화 부문을 석권하였다. 대표작이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을 그려낸 <한평생>, 전통문화를 소개한 <태권도>, <씨름> 그리고 유무형의 문화재를 다룬 다큐들이다. 이때 문화영화사는 많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한국 다큐의 개척자로서 일익을 담당했다.

중앙대 연영과 1기생인 권순재 감독이 운영하던 중앙영화사도 대표적인 문화영화 제작사 중 하나이다. 대종상 문화영화부문상을 독식하였고 타이틀이 금관상으로 바뀐 시절까지 수상경력이 쭉 이어진다.

1기생 중 또 한 분이신 박승희 선배도 영등포 쪽에서 오랜 기간 문화영화사를 운영하셨다. 2기생 김재웅 감독과 정효근 선배도 대단하게 활동을 했었는데 김재웅 감독은 학교강단에서 강의를 하였고 정효근 감독은 고향인 강릉으로 귀향했다.

3기생인 이영민 선배는 '태평양미디어'를 세워 내가 만든 영화로 금관상을 십여 개를 수상하였다. 역시 3기생인 전석주 감독은 서울시청으로 스카우트 되었는데 영상물 제작이 많았던 서울시청에서 감독 한 명을 두면 우리도 직접 제작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여 특채되었다고 한다. 대우는 사무관 급이었다.

전 감독이 서울시에 들어가 충무로 영화제작진으로 팀을 꾸려 서울시 홍보영화를 수없이 만들다가 한국전력 홍보팀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1981년 즈음이다. 홍보실 팀장으로 수많은 전기 관련 영상물을 기획, 제작했는데 정년퇴직했다.

직접 연출한 작품은 본인도 기억을 못하시는데 한 2백 편 되느냐는 질문에 그보다는 많다고 답했다. 3기생들 중에 많은 분들이 별세하였는데 전 감독은 건강한 모습으로 끼사랑산악회 산행을 함께 했다.

인생길은 산행과 같다는 전석주 감독
▲ 인생길은 산행과 같다는 전석주 감독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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