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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시나리오 창작기 ② ‘사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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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시나리오 창작기 ② ‘사방지’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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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의 석 줄을 100분 드라마로 완성한 '사방지'
▲ 조선왕조실록의 석 줄을 100분 드라마로 완성한 '사방지'

‘사방지’는 당대의 사람들에겐 요물취급을 받으며 이질감으로 배척되었던 비운의 여인이었다. 그녀(혹은 그)는 조선조 세종대왕 때 이순지 대감댁에 살던 하녀이다. 이순지 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조선조 발명왕 장영실이 기거했던 댁이기도 한데 그 집에 하녀로 있던 이가 바로 사방지이다. 그녀는 인간이지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결국 죽음에 이른다. 그녀의 죽음은 철저한 희생이다. 삶 또한 철저한 희생이다.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양반들에게 유린당하다가 양반들에 의해 죽음에 이른다.

사방지로서는 자신도 모를 운명으로 양성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이소사와의 운명적 만남으로 자신이 소유한 제2의 성을 알게 된다. 그것은 곧 사랑의 시작이요 파멸의 길이었다.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삶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펼쳐진다.

과분한 상전과 사랑을 나누고 객지로 도피하여 새로운 삶을 꿈꾸었지만 그것은 일장춘몽일 뿐이다. 비록 산속 움막에서의 화전민 생활에서 안빈낙도를 꿈꾸었는지도 모르지만 사람의 삶이란 끊임없는 비극의 연속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주체할 수 없었던 사방지는 스스로 방탕의 길을 걷게 된다. 양반들의 노리개로 전락한 그녀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사랑을 깨닫게 되지만 이미 그를 옥죄어 온 양반들의 추적에 그녀도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은 속죄가 아닌 희생의 강요의 결과일 뿐이다. 궁궐에 까지 퍼진 온갖 악행의 소문으로 그녀는 인간 세상에서 추방된다. 그러나 그녀의 슬픈 운명처럼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이소사 마저 죽음으로써 그녀의 곁을 떠난다. 그녀의 선택은 이제 한 가지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으로 가는 것뿐이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세종실록에 그녀의 이름을 올리게 된다. 폐쇄된 조선조 양반들의 노리개로 전락해 생을 마감해야 했던 슬픈 운명의 이상인간 사방지. 인간사회에 동질화하고자 했지만 끝내 그녀는 시대의 희생양으로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천하의 요물로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 시나리오를 대학선배 송경식 감독이 가져가 인창영화사와 계약을 성사시켜 나도 작가데뷔를 하게 된다. 신봉승 선생님이 말씀하신 한 팔은 아니더라도 반 팔 정도 분량의 습작을 한 후이다. 1986년도의 일인데 영화는 흥행성을 가미한 지상학 작가의 각색을 거쳐 1988년 아세아 극장에서 개봉되어 10만 관객을 동원했다. 당시 이 흥행기록은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이혜영과 방희가 주인공을 맡았고 박암, 이동신, 곽정희, 조주미 등이 공연했다.

그녀가 조선조 발명왕 장영실과는 무슨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사건은 이순지 대감의 딸인 이소사가 시집갔다가 소박맞고 친정으로 돌아오는 것부터 시작된다. 사방지는 여자 중의 여자로 똑똑하고 아름답고 일 잘하는 하녀였다. 게다가 수 잘 놓고 바느질 잘 하는 요즘말로 얼짱, 몸짱, 일짱이었다. 누구나 탐을 낼만한 여종이었는데 어머니는 쫓겨온 딸을 위해 말벗이라도 하라며 사방지와 같이 지내도록 한다.

이소사에게는 경손이란 오빠가 한 명 있었는데 과거시험을 준비 중이었고 끝쇠란 머슴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사방지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고 옆집에 사는 훈장어르신은 항시 그들의 행동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데 딸을 위로하며 말벗이나 하라던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어느 날 밤 적적함을 못이긴 이소사가 사방지를 자신의 이불 속으로 불러들였는데 그만 상상치도 못한 일을 겪게 된다.

이 사건은 조선왕조실록에 까지 오른 조선조 최대의 성 스캔들로 기록되는데 뭐 사대부 여인과 몸종과의 불미스러운 일이 온 조정을 떠들썩하게 해 왕의 실록에 까지 실릴까 궁금해진다. 실록에는 몇 줄 안 되는 내용만이 쓰여 있지만 나는 100분짜리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써냈다. 이 영화는 아시아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조감독 생활 때까지 쓴 시나리오가 스무 편인데 조감독을 마감하고 연출과 각본을 겸하며 지금까지 약 사십 편의 시나리오를 더 썼다. 1993년 즈음 국군홍보관리소 제작의 <재수 좋은 녀석들>을 썼고 이후에도 <킬더맨>, <귀환>, <유리벽>, <편집의 귀재>, <개벽을 부르는 소리와 춤>, <새빨간 거짓말>, <장편독립영화 만들기> 등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글쓰기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기에 현재도 이렇게 글쓰기를 계속한다. 최근에 글쓰기를 시작한 후배가 제법 그럴 듯한 시나리오를 써가지고 왔길래 “얼마나 습작을 했냐?”고 물었더니 그야말로 처녀작이라고 해 놀란 적이 있다. 아직은 더 습작을 하라고 했지만 나의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누구든 습작에 상관없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지금의 생각이다. 그것은 영상시대를 맞아 다양하게 경험하는 여러 매체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작을 간접체험 하기 때문이다.

영화 조감독 동인회 등록증
▲ 영화 조감독 동인회 등록증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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