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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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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와 영화
  • 안태근
  • 승인 2021.07.1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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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태근 박사
▲ 안태근 (영화감독, 문화콘텐츠학 박사)

2021년, 영화계 입문한지 만 40년이다. 초등학생 때 신상옥 감독의 ‘꿈’을 보며 꿈을 키웠다.그리고 영화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중앙대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했다. 1975년 대학 2학년 때 워크숍에서 만든 나의 첫 영화는 ‘폭류(暴流)’이다. 거칠게 흘러가는 청계천의 탁류를 통해 인생을 그리고자 했다. 그러나 미숙한 첫 걸음이었고 ‘적상춘’, ‘폭춘’ 등의 영화를 만들고 입대했다. 복교 후 1980년에 군부정권을 풍자한 ‘동춘(童春)’을 만들어 영화인협회가 주최한 제1회 한국단편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신의 뜻이라 판단해 영화계 투신을 결행했다.

1981년 중앙대를 졸업 후 정진우 감독의 연출부로 일하던 나는 현장에서 차차 적응되며 극영화연출의 자신감을 갖게됐다. 사실 단편영화 연출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 구중모 촬영기사의 퍼스트 조수였던 임학명이 나와 단편영화 한 편을 찍어 보자고 권유를 했다. 그가 이장호 감독의 16mm 보렉스 카메라를 빌려오고 렌즈는 대광기획이라는 광고회사에서 빌려오고 내가 필름을 구입하면서 구체화됐다.

마침 KBS에서 이산가족찾기 방송이 시작됐다. 나는 우선 그 현장부터 담았다. 당시에는 온 한반도가 눈물의 도가니였다. KBS에서의 화면은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생생한 다큐였다. 나는 ‘맥(脈)’이란 제목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헤어진 가족 간의 혈육의 정과 울부짖음을 목격하고 그 현장에서 자연스레 떠오른 제목이었다.

통일은 돼야 한다는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전달됐다. 그러나 진정한 작품으로 승화되기 위해서 뭔가 더 필요했다. 나는 살풀이 춤사위를 생각했다. 한국인의 '희노애락'을 가장 잘 표현한다는 춤사위 아닌가? 대학극장 큰 무대에서 펼쳐지는 살풀이춤을 찍었고 그것에 힘을 불어넣어준 분이 고 이경자 편집기사이다. 영화는 한 편의 시가 되었다.

열흘간의 작업을 마치고 출품해 '제9회 한국청소년영화제' 에서 우수상을 탔다. 내 작품을 못 만들어 머리가 굳어져 가는 느낌의 2년을 보내고 받은 상이다. 그리고 상금으로 받은 150만 원으로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보렉스카메라와 줌렌즈를 구입했다. 그리고 1년짜리 대작을 찍을 기획에 들어갔다.

그 때 영화진흥공사의 방충식 씨가 추천해준 분이 임권택 감독이었다. 그 때 임 감독은 문화영화라고 일컬어지는 40분 내외의 중편영화 연출도 했던 때이다. ‘이명수특공대’라는 국방부 교육영화를 찍으러 광주로 내려갔다. 광주 상무대에서 시작된 촬영은 탱크가 몇 대씩 동원되는 상영시간은 짧지만 대작이었다.

나는 ‘한국환상곡’이라는 제목의 내 영화를 기획했다. 한국의 반만년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대작 다큐였다. 그것은 ‘맥’에서 못다 한 부족함을 채운다는 거창한 기획이었다. 그리고 만든 게 ‘회심’이다. 사찰에서 '49재' 지내며 불리는 회심곡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데 한국여인이 한 평생을 49재를 지내는 딸의 회상으로 담아냈다.

1986년 다큐멘터리 ‘한국의 춤 살풀이’를 감독하며 꿈에 그리던 감독으로 정식 데뷔했다. 그 후 중앙영화사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일하며 문화영화 시나리오 ‘한국의 술 명주’, ‘한국의 춤 승무’ 등이 영화진흥공사 소재공모에서 뽑혔다. 그리고 이 해에 ‘사방지(舍方知)’로 시나리오 작가 데뷔를 했다. 이 영화는 송경식 감독이 연출해 아세아 극장에서 개봉했다. 그 때 써놓은 시나리오가 열 편 정도 있었고 내게도 곧 극영화 연출의 기회가 오리라고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문화영화 연출 의뢰가 들어왔는데 모두 30여 편 정도를 각본, 연출하는 등 바쁘게 지냈다.

이 후 나는 한국생산성본부가 제작한 ‘귀항’으로 금관상영화제 우수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조명상을 수상했다. 한국생산성본부의 영상제작부 전문위원이 돼 이상언 촬영기사와 찍은 ‘철판을 수놓는 어머니’로 역시 우수작품상, 기획상, 촬영상, 조명상을 수상했다. 국방부홍보관리소에서는 군홍보영화의 작가 겸 감독으로 일했다. 그 때 찍은 ‘대한국인 안중근’이 기억에 남는다. 이 다큐드라마는 KBS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나는 영화계 수상 경력으로 1991년 가을 부터 EBS에서 PD로 일하게 됐다. 그렇게 프로그램을 1000여 편 제작하며 2013년까지 24년이 짧게 지나갔다. 그해 12월에 EBS 퇴임 후 난 호남대 문화산업경영학과 교수 발령을 받았다. 박사 학위를 받은 건 바쁘게 지내던 중 신의 한 수였다. 벌써 청주대, 한국외대, 서울디지털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한지도 20년이 흘렀다.

2018년 스님인 유영의 감독의 ‘산상수훈’에서 프로덕션 슈퍼바이저로 제작을 도왔다. 2019년에도 극영화 ‘유리벽’ 시나리오를 썼고 2020년 단편영화 용 ‘편집의 귀재’를 써서 촬영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올해 서울필름아카데미의 원장에 취임하며 독립영화를 기획중이다. 아직 나의 영화 이력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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