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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여기서 잠깐 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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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여기서 잠깐 내 이야기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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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금관상영화제 작품상 수상작인 '철판을 수놓은 어머니' 거제도 현장에서
▲ 1991년 금관상영화제 작품상 수상작인 '철판을 수놓은 어머니' 거제도 현장에서

동료와 후배들 이야기를 쓰다 보니 드는 의문이 왜 너는 아직도 영화감독을 못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감독이라 함은 극영화 감독을 말한다. 이미 밝혔듯이 나는 정진우, 임권택 감독 밑에서 조연출 생활을 5년 간 했었다. 그러나 영화감독 할 길은 까마득해보였다. 우선 시나리오라도 준비하자고 틈틈이 써둔 시나리오도 열 편 가까웠다. 그 중에 한 편이 인창영화사가 제작한 <사방지>로 나의 시나리오 작가 데뷔작이다. 1986년에 계약하여 1988년에 개봉되었다.

시나리오의 장르도 다양하게 준비를 했건만 당시에 극영화 감독을 한다는 것은 10년 이상의 조연출 경력이 있어야 가능했다. 그런 관례를 파괴한 사람이 배창호 감독이다. 물론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그는 이미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서 당선되기도 했다. 그는 이장호 감독이 기획실장으로 있던 현진영화사에서 <꼬방동네 사람들>이라는 영화로 감독 데뷔를 한다.

그리고 흥행에도 어느 정도 성공을 하여 다른 조연출들도 전보다는 쉽게 감독 데뷔를 하였다. 장길수, 신승수 같은 케이스일 것이다. 나랑은 같은 연배인데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현장에 나가니 그들은 나보다 훨씬 이전에 현장에 진출했었기에 나보다는 일찍 감독 데뷔가 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곧 기회가 오리라 생각을 했고 열심히 일했는데 내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당연했다.

그러나 극영화 감독이 여의치 않자 나는 문화영화라고 불리는 홍보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생계를 해결하려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첫 편이 내무부 소방국에서 발주하고 한국미디어에서 제작한 <두 얼굴의 불>이었다. 룸싸롱 화재사건을 통해 안전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인데 소방훈련소에서 김광남 특수효과팀을 불러 찍었다.

그렇게 한 편이 시작되었는데 일이 끊이질 않고 의뢰되었다. 물론 이 사이에도 극영화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고 주변에서도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이관용 원작의 <바람의 아들>이나 백우암 원작의 <유배당한 사람들>은 제작자들과 연결이 되었으나 필름 값이라도 일부 부담하라는 얘기에 더 이상 접촉을 안했다.

신인감독이니까 그런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하려면 해라 식인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제작되어 광고도 안하고 편 수 채우기로 희생양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배짱이 생겼다. 서두를 필요 없이 언젠가는 데뷔할 텐데 제대로 투자받으며 해야지 하는 계산이 섰다.

나의 영화감독 공식 데뷔년도는 1986년이다. 그해에 <한국의 춤 살풀이>란 다큐가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쳤기 때문이다. 이후 <귀항>, <철판을 수놓은 어머니> 등의 중편 영화들을 계속 찍었고 그 영화들은 영화진흥공사의 금관상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기획상 등을 수상했다. 영화진흥공사 분들은 언제 극영화연출을 할 거냐며 덕담을 건냈다. 그러고 보니 청소년영화제 때부터 문화영화 시나리오, 금관상영화제까지 영화진흥공사 주최 행사에서 10여 년간 계속해 수상을 하였다. 이도 나만의 유일한 기록이다.

그 때 EBS에서 제의가 들어왔고 방송PD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24년간 근무를 하게 되었고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를 포함해 천여 편이 넘는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나는 지금도 현역으로 일을 하고 있으며 준비된 감독이다.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고 그날에 대비한 준비된 감독이다. 현재도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다큐 영화를 촬영하고 후반작업 중이다.

내게 감독이라는 호칭은 학생 때부터 따라붙었고 1990년 금관상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지금까지 불리는 제일 오래된 호칭이다. 그러나 감독이라고 다 같은 감독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더욱 분발할 일이다. 나와 동명이인의 감독이 있다. 나도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지만 그는 애니메이션 전문감독으로 <망치>, <신암행어사> 등을 만들었다.

1990년 금관상영화제 작품상 수상작인 '귀항' 촬영 현장
▲ 1990년 금관상영화제 작품상 수상작인 '귀항' 촬영 현장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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