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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김영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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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김영준 감독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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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끼사랑 산악회 청계산 과천 매봉 등산에 나선 김영준 감독(사진 왼쪽)
▲ 2011년 3월, 끼사랑 산악회 청계산 과천 매봉 등산에 나선 김영준 감독(사진 왼쪽)

김영준 감독은 1971년에 문리대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하여 3학년 때 군에 가서 1976년에 복교하여 나와 같이 학교를 다녔다. 우리 74학번들은 이미 워크샵 몇 편을 만들어 필름 로딩이나 카메라 조작, 영화연출의 기본을 배운 상태였으나 복교한 선배들은 군 입대 전에는 연극전공을 했던 것인지 영화연출에는 신입생(?)상태였다.

따라서 우리가 연출하는 영화에 스태프로 참여했다. 때론 출연도 했는데 우리 동기 김혜옥이 출연한 나의 연출작 <적상춘>(1976)에서는 김영준, 이한상, 조성훈 트리오가 성폭행범으로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멀리 국수리로 로케이션을 간 <난파선Ⅱ>에서도 그들 트리오는 뒷일을 마다하지 않고 험한 일들을 담당했었다.

후배인 우리들이 감독, 주연을 할 때에도 그저 카메라 뒤에서 후배들이 하는 일들이 잘 끝나도록 도와주었다. 1976년 2학기 워크숍 작품인 내 영화 <폭춘>에서는 촬영을 담당했다. <적상춘>에서 그리지 못한 인간의 심리를 그려보고자 다시 같은 주제를 택해 리메이크했다. 결과는 생각했던 것처럼 신통치 않았고 결국은 새로운 소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적상춘>에서 주인공을 맡은 김혜옥이 출연했고 상대역으로 나도 출연했다.

워크숍 영화 '폭춘' 촬영을 담당한 김영준(오른 쪽 두 번째)
▲ 워크숍 영화 '폭춘' 촬영을 담당한 김영준(오른 쪽 두 번째)

그는 촬영을 맡아 늦가을에 주로 학교 흑석동 캠퍼스 일대에서 촬영했다. 그리고 곧 그들의 시대를 맞았다. 그들은 이제 스스로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내가 군대 갔던 1977년도에 그들의 활동은 눈부셨다. 건국대를 졸업하고 우리 과로 편입한 김항원 선배와 어울려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김영준 선배는 <고옥>이라는 단편영화를 청소년영화제에 출품해 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한상 선배도 <선>이라는 영화로 청소년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졸업 후에 KBS와 YTN에 근무한다. 김영준 선배는 졸업 후 김학수 감독의 삼진영화사에 입사해 문화영화 감독이 된다. 그러다 국립영화제작소에 들어가 본격적인 국가홍보 영화일을 하였다.

그는 2년 반 정도 근무하다 성격이 안 맞는 공무원 조직에 염증을 느끼고 사표를 낸다. 퇴사하고도 한 달간 학교선배이기도 했던 도상선 감독의 출근하라는 독려전화에도 결국 그는 영화와의 연을 결국 끊는다. 영화란 것이 재능만으로 될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내가 복교를 했을 때 그는 미도파백화점에서 양복지 사업을 하고 있었다. 다소 놀라운 변신에 의아했었지만 그저 가업을 이어 사업가로 변신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얼마 후 대관령 식품회사를 차려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런 사업을 하기에 너무 젊은 것 아닌가 싶었는데 14년간 이 사업체를 잘 운영해왔다.

그러나 IMF의 격랑을 결국 피해가지 못한 채 부도를 맞고 수백억 원의 사업체를 기업사냥꾼에게 넘기고 만다. 그 때의 위기를 등산을 하며 넘겼다는 그이다. 요즘은 양평에 주로 거주하며 서울 집을 오고간다. 인생의 희비를 너무 일찍 겪은 그에게 다시 한번 인생대역전의 기회가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의 딸도 모교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성우로 활동 중이다.

▲ 성실하고 차분하며 굳센 의지로 동문 사이에서 소문난 그이다.
▲ 성실하고 차분하며 굳센 의지로 동문 사이에서 소문난 그이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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