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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김정규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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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김정규 선배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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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EBS 우면동 본사 시절 기획제작부원들, ①번이 필자, ⑦번이 김정규 부장이다.
▲ 1995년, EBS 우면동 본사 시절 기획제작부원들, ①번이 필자, ⑦번이 김정규 부장이다.

1995년 당시 나는 문화 다큐멘터리 <전통문화를 찾아서>를 연출하고 있었다. 거의 2주일에 한 번씩 지방으로 출장을 떠났다. 전통문화 관련 아이템이 지방에 주로 산재되어 있고 관련 명인들이 지방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무려 5년간이나 연출했다. 파트너 PD는 계속 바뀌었지만 나는 붙박이였다.

위의 사진은 당시 부서원들인데 18명 중에 나의 조연출이 무려 4명이나 있다. 그들도 다큐멘터리 제작의 맛만 보고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동 배치되었다. 자발적이지 않은 배치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배워야 할 포맷이 여럿이기에 바뀌기도 했지만 일의 강도가 센 프로그램이기 재배치되었다.

이 부서를 책임지는 김정규(1946년생) 부장은 시길수 부장의 후임이었다. 나와는 대학 동문이기도 하여 수시로 편하게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의 관심사는 나와 많이 일치했는데 같은 학과를 나와서이기도 하지만 경력과 취향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이든 항상 열정이 가득했다.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국립극장에 재직하다가 교육방송에서 오랫동안 PD생활을 하였고 제작국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나는 다른 부서로 발령받아 생방송 <선생님 질문있어요>를 연출 후 다시 기획제작부로 복귀하여 <역사속으로의 여행>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황인용 MC 진행의 <TV 인생노트>를 제작 중이었다. 어느 날, 책상의 서류 밑에 깔려 잊혀져 있던 부처님 오신 날 특집 다큐 제작도 내 차지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1997년 5월 14일에 방송된 <달마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는 나를 돌격대 대장이라고 불렀다. 나는 웬만해서는 사양할 줄 모르는 해결사였다. 이 해에 특집 다큐는 도맡아 제작했는데 설날특집, 석가탄신일 특집, 광복절 특집, 추석특집까지 그야말로 특집 다큐의 퍼레이드였다. 매주 50분 토크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이게 가능한가 생각이 들 지경인데 지금도 의문이다. 튼튼하고 지칠 줄 모르는 나의 창작열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1995년 2월 <전통문화를 찾아서>는 폐방을 앞두고 있어서 혼돈스러운 상황이었다. 무려 5년간이나 방송이 되었으니 아이템 고갈이 대외적인 이유였는데 아이템은 수도 없이 많기에 핑계였고 KBS의 유사 다큐멘터리인 <한국의 미>도 폐방되는 상황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시청율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는 이런 문화 다큐멘터리가 시청자들로부터 등한시되었다.

2006년 7월, 예순을 눈앞에 두신 선배님이 돌아가셨다. 58세에 정년퇴임하고 2년 후 갑작스러운 타계 소식을 전했다. 투병 소식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었는지 안타까웠다. 병명은 담석으로 큰 병도 아닌데 생전에 맥주라도 자주 할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의 삶 후반전은 EBS와 함께 했고 그는 영원한 EBS 맨으로 남았다.

방송현업에 있을 때에는 어린이 드라마를 연출하였는데 유난히 책을 좋아하여 항상 방 한 쪽에 책이 가득했었다. 또 얼마나 영화보기를 좋아했으면 우연히 극장에서도 만났다. 나야 그렇다 치고 극장 가기가 쉽지 않은데 하여튼 극장에서도 만난 걸 보면 그분도 꽤나 영화를 즐겼던 것 같다.

연극계에서도 종사하여 일가견이 있으셨는데 대학 때 스승이기도 했던 최재복 교수와의 인연, 동기동창인 영화배우 문희 씨 이야기, 부산에서 어깨들의 형님으로 통했다던 이야기까지 많은 말을 나눴던 선배이기에 나로선 더욱 애틋하기만 하다.

예술가로서의 풍모가 넘쳤던 분, 방송인으로서 또 대학교수로서 마지막 까지 쉬지 않고 정화예술대에서 강의를 하였는데 저 세상에서나마 편히 쉬시기를 소망한다. “존경하는 김정규 선배님,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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