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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동기생 김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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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동기생 김혜옥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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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한강변에서 대학 워크숍영화 '적상춘' 촬영 중
▲ 1977년 한강변에서 대학 워크숍영화 '적상춘' 촬영 중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했다고 모두가 그 계통에서 종사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김혜옥은 불운하다. 충분히 배우로 성공할 수도 있었지만 운명은 그녀를 평범한 주부로 만들었다. 김혜옥은 당시 연극영화과에서 촉망받던 연기자였다. 나는 일찍이 그녀의 이국적인 마스크를 보고 스타성을 보았다. 그래서 내 영화 <적상춘(赤想春)>의 히로인으로 캐스팅했다.

그녀는 쾌활했지만 도도했고 나는 영화 속에서 그 도도한 콧대를 영화화하고자 했다. 우리는 3학년 1학기 영화워크숍으로 '어느 봄날의 붉은 상상'이라는 의미의 <적상춘>이라는 단편영화를 찍었다. 내용은 자연스럽게 상상유희를 영상화하며 영화적 미학을 보여주고자 했다.

공원의 벤치에 장미꽃을 들고 앉아 있는 청년은 청소부의 빗질을 보며 상념에 잠긴다. 영화는 결국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보기인데 청년은 상상 속에서 여친을 난도질하고 있다. 청년의 의식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두 사람 사이의 문제가 보여진다. 결국 청년은 봄날의 상상유희를 털고 공원을 떠난다.

첫 촬영은 태능 푸른동산이었다. 공원이 많지도 않았지만 굳이 태능을 택한 것은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촬영은 편입생 김항원 선배가 잡았고 이중거 지도교수께서 현장까지 나와 샷을 잡아주셨다. 이 교수는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충무로에서 감독 데뷔를 하려다가 교수의 길을 택하신 분이었다. 정말 모두 열심히 찍었다. 청소부를 맡았던 임영란 동기도 빗질의 강약을 조절하며 연기했다. 촬영 후 신설동 복집에서 교수님을 모시고 소주를 한 잔하고 영화를 토론했다.

▲ 열연을 펼치는 김혜옥 양(오른쪽), 그 왼쪽이 이중거 교수님(왼쪽 네번째)
▲ 열연을 펼치는 김혜옥 양(오른쪽), 그 왼쪽이 이중거 교수님(왼쪽 네번째)

나는 상상 속의 한 장면을 강변으로 설정했다. 6월 뙤약볕 아래 스태프 십여 명과 함께 구 반포아파트 뒤 강변으로 나갔다. 그 때 강변은 모래사장이 아니라 자갈밭이었다. 동기생 정태원과 김혜옥은 뙤약볕 아래 자갈밭 위에서 힘든 정사 장면을 연기했다.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김 양이 뭐라거나 말거나 나는 콘티대로 찍을 수밖에 없었다. 토라진 여배우를 달래는 것도 내 몫이었다. 그 외 몇 편을 더 만들고 2404 강의실에서 전 학년 영화제를 했는데 많지 않은 관객들은 많은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얼마 전 그녀와 그 때의 일을 이야기하니까 어렴풋이 옛일을 떠올린다. 추억은 가학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는데 확실히 각인시켜주지 못한 것을 보니 의를 상하더라도 끝장을 보았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는 나름대로 만들어졌다. 나로선 두 번째 영화에서 눈을 떴다.

3학년 2학기 영화워크숍 <폭춘>에도 그녀가 출연하였는데 만추의 흑석동 캠퍼스에서 찍었다. <적상춘>의 속편 격인데 한 편 더 찍어보면 뭔가 나올 것 같았지만 결론은 아니다. 별로 흡족하지도 그렇다고 안 좋다고 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느낌이다. 그래서 독창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용은 어떤 문제로 인해 여인을 살해하려는 남자의 이상심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상심리는 글로는 그럴듯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상으로는 절대 힘들다는 것을 실감했다. 왜 이렇게 죽음에 집착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적으로 이상심리라는 것이 몹시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 즐겨 보았던 불란서(프랑스라는 이름보다 훨씬 멋스럽다.)영화의 영향이다.

당시 영상파 감독 끌로드 를루슈의 <남과 여>와는 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같은데 완성도는 턱없다. 또 한 명의 감독 쟝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를 모방했을 수도 있다. 허나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습작일 뿐이다. 교수님에게 학점만 잘 받았다. 입대 전 마지막으로 찍은 영화인데 그녀는 졸업을 하고 연기자 대신에 항공승무원을 택했고 결혼하며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내가 충무로에서 감독이 되었을 때 그녀는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심한 세월이 반세기나 흘러 지금은 끼사랑산악회에서 총무국장을 맡아 나를 도와주고 있다. 그러나 내 마음속의 그녀는 항상 이십대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 김혜옥의 필름사진, 16mm 필름 사진이라 화질이 좋지 않다.
▲ 김혜옥의 필름사진, 16mm 필름 사진이라 화질이 좋지 않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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