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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유지인 탤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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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유지인 탤런트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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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도 안나는 어느 날, 30년 만에 한 턱을 받았다. 왼쪽이 필자, 오른쪽이 탤런트 유지인
▲ 기억도 안나는 어느 날, 30년 만에 한 턱을 받았다. 왼쪽이 필자, 오른쪽이 탤런트 유지인

유지인(兪知仁)의 본명은 이윤희이다. 가나다 순으로 정한 학번이 바로 내 뒷번호라서 입학 초에 첫 수업을 나란히 앉아 들었다. 천하제일의 미녀와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들으며 비로소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한 것을 실감했다. 그녀는 1974년 박종호 감독의 <그대의 찬손>으로 데뷔한다. 그녀는 이미 1973년에 TBC 탤런트로 선발되어 활동 중이었다.

우연히 수학여행을 갔던 여고생 시절의 사진을 보았다. 안 예쁜 여고생이 있으랴 만은 그녀는 발군이었다. 그녀는 천생 배우 팔자를 타고 났다. 그녀는 이두용 감독의 <오빠가 있다>, <피막>, 정소영 감독의 <내가 버린 남자>, 정진우 감독의 <가시를 삼킨 장미>, 배창호 감독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 고영남 감독의 <미리 마리 우리 두리> 등 출연했다. 그리고 기자들은 장미희와 정윤희와 함께 그녀들을 한국영화 2대 트로이카라고 불렀다.

그녀는 이두용 감독과 1978년에만 3편의 영화를 함께 했는데 <오빠가 있다>, <경찰관>, <생사의 고백>이다. 유지인의 액션영화 출연은 약간은 의외인데 이 시기 이두용 감독은 액션영화를 탈피한 본격적인 사회성 영화를 추구했고 유지인이 그 여주인공을 맡았다.

이들 콤비가 제대로 만난 건 1980년의 <피막>이다. 그녀가 피막지기의 딸로 신분을 감춘 채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가문의 체통과 명예를 위해 상민을 죽인 양반의 횡포에 항거하는 무녀를 소재로 한 실험적인 시대극이었다. 이두용 감독이 <최후의 증인>의 실패 이후 시련기를 겪으며 만든 저예산영화이다.

하지만 실험적이며 파워풀한 영상으로 저예산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물론 유지인의 처절한 무녀 연기가 영화의 성패를 가른 분수령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는 제38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며 이두용 감독의 위상을 드높였다.

이 시기가 그녀의 최전성기였다. 1979년 제18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심봤다>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더니 아시아영화제에서 인기여배우상을 받았다. 당시 기사를 보았더니 한국의 임청하로 소개하고 있다. 시원시원하며 다소 남성적인 성격의 그녀도 <동방불패> 류의 영화에 출연했어도 좋았을 듯하다. 영화의 품격을 높여줄 그녀이기 때문이다. 1979년에는 <내가 버린 남자>, <피막> 외 1980년에는 <마지막 밀애>, <바람불어 좋은 날> 등 주요 대표작을 포함해 14편에 출연했다.

TV드라마는 <결혼행진곡>, <상노>, <태평무>, <가족>, <아내>, <약속의 땅>, <보통사람들>, <서울야곡>, <금쪽같은 내 새끼>, <삼총사>, <회전목마> 등 수백 편에 출연했다. 그녀는 결혼과 함께 은퇴하며 휴지기를 갖고 2002년 복귀하여 TV 출연을 하며 지금에 이른다. 그런데 요즘 그녀의 얼굴을 자주 볼 수가 없다. “윤희 씨, 얼굴 한 번 봅시다.”

▲ 대학의 후배 EBS 박치대 촬영감독(왼쪽)이 한 턱에 동석했다.
▲ 대학의 후배 EBS 박치대 촬영감독(왼쪽)이 한 턱에 동석했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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