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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기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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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기록이야기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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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의 첫 연출작 '전통문화를 찾아서' 타이틀
▲ EBS에서의 첫 연출작 '전통문화를 찾아서' 타이틀

기록은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우리의 일상을 남기기 위해 남기는 흔적들이다. 또 하나는 운동 경기 따위에서 세운 성적이나 결과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나는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런 글쓰기를 해왔다. 다큐멘터리 영상의 의미도 기록성에 있다. 그런데 지금 말하는 기록은 후자로서의 기록이다.

기록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인류의 발전은 기록을 경신하며 이루어진다. 기록은 지금 현재의 것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기록을 깨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다. 올림픽 현장은 기록 깨기의 잔치이다. 신기록이 수립되면 인류는 그 기록에 열광한다. 이런 거창한 기록은 아니지만 내가 갖고 있는 기록에 대해 몇 가지 써본다.

내가 EBS 맨이므로 EBS 내에서의 기록이 거의 다이다. 나의 자랑처럼 읽혀질 수도 있어 조심스럽지만 사실이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의 다큐멘터리 연출은 EBS에서의 최고 기록은 물론 한국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 최다연출 기록이다. 지금까지 186편을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고 있으므로 한국 최고의 기록을 스스로 깨고 있다. 최다 연출을 했다한들 뭐 특별한 것은 아니다. 2002년 이후에는 제작기록 쓰기를 멈추었다. 끊임없이 해오다가 기록 쓰기에 그만 실증이 났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어서였다. 그러나 2010년 『나는 다큐멘터리PD다』를 저술하며 기록을 재정리하였다.

EBS는 다량을 연출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에 가능한 신기록인데 내가 워낙 일찍 부터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고 있으므로 기록을 경신하고 또 앞으로도 경신하게 될 것이다. 한참 정력적으로 만들 때에는 다큐멘터리를 2주에 한 편씩 만들었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의 일인데 <전통문화를 찾아서>는 가히 안태근 표 다큐멘터리이고 나는 공장장이었다.

그만큼 다량 생산이었다. 작가 두 팀을 두고 나는 부지런히 촬영을 다니고 완성을 했다. 이렇게 왕성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재미 때문이다. 뭘 만들어 낸다는 것처럼 신나는 일은 없다. 이러니 자연히 상복도 있었다. EBS 최우수작품상도 받고 더 신나서 일했다.

내게 EBS 초대 다큐팀장이라는 보직은 어색한 옷일 뿐이다. 보직기간에도 제작하랴, 회의하랴 더 바빴다. 보직을 떼고 다시 본격적으로 제작을 하니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근무평점은 바닥을 쳤다. “그럼 관리는 누가합니까?”라는 박흥수 사장의 말엔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다큐멘터리 최다 제작 기록뿐만이 아니라 교양프로그램 분야에서도 최다 제작기록을 가지고 있다. 2022년 이전의 총 제작 목록의 기록을 셈 해보면 1,100여 편을 상회한다. 제작의 기록은 1975년부터 시작되었는데 47년간 매년 23편 가량을 만들어 낸 셈이다. 평균 매달 2편 가량을 만들어 낸 기록이다.

매일 방송 프로그램은 거의 하지 않은 편인데 <건강클리닉>의 경우 매 주 한 편씩 방송하다가 1년 후 매일방송으로 바뀌어 일주일에 다섯 편씩을 제작했다. 주 다섯 편이라 하면 월, 화, 수, 목, 금 5일간 매일 나간 것이다. 이 때는 작가 두 팀에 조연출도 두 팀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방송 펑크였다.

나는 EBS에서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을 자체 제작하였다. 바로 <꼬마천사 지지>시리즈이다. 1998년 즈음인데 매년 한 편씩 만들어 2008년에 <당찬 꼬마 세리>까지 만들었다. 어쨌든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이건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한 결과물은 아니다. 이 기록은 내 이전 세대에서는 있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죽도록 일한 세대들이다. 그러나 전 편을 꼭지별로 외주제작 형태로 만들지 않는, 즉 전체 편을 혼지 연출하는 케이스로는 최다일 것이다.

요즘은 이렇게 무리하게 일을 시키지도 않고 하지도 않는다. 2011년까지 연출했던 메디컬 다큐 <명의>도 제작 텀(term)이 6주이다. 그래서 옛 이야기는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세대는 그걸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세대이다. 무쇠인간 세대일까? 정신력만으론 그렇게 무장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퇴임을 앞두고도 <어린이드라마 스파크>를 제작하며 기록을 계속 경신했다. 주변에서 심의실 근무를 권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런데 EBS라는 시스템을 벗어나니 한 편의 기록을 추가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이다. 그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그런 일을 EBS에서는 떡 먹듯이 했던 것을 새삼 실감했다. 물론 EBS에서 내 맘대로 제작한 것은 아니다. 기획안을 내고 물(?) 먹은 것도 부지기수이다. 작가들을 동원하여 작성한 기획안이 물 먹을 때의 느낌은 죽을 맛이다. 고생한 작가들을 위로 한다고 마신 술이 작가들을 두 번 죽였다. 좋지 않은 해결방법이었는데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기에 그렇게라도 해서 잊고 싶어서였다.

물론 채택 된 경우가 많았으니 나는 분명히 EBS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나로서는 기록을 의식한 적은 없고 쉬지 않고 만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기회가 된다면 기네스 기록에 정식으로 도전해 볼 생각이다. 한국인처럼 일벌레는 없다. 한국 기록은 당연히 세계 기록이다.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긍정적인 생각은 내게 이런 기록을 선물하였다. 아직도 내게 행운이 계속한다면 나의 기록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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