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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프로그램 제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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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프로그램 제작비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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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청사초롱과 홍등' 시리즈를 제작하며
▲ 2007년 '청사초롱과 홍등' 시리즈를 제작하며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 및 드라마의 제작비는 과연 얼마였을까? 기억에도 가물거리지만 풍족했던 것은 아니고 빠듯한 예산 내에서 제작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출연료의 경우만 해도 최고의 명인을 찾아 출연시키는 것이기에 최고의 사례를 지급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다만 “저희 방송국이 정한 최고의 사례를 지급해드립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었다. 그럼 그것은 또 얼마였을까? 1990년 당시 특급 출연료는 45,000원으로 기억한다. 물론 인터뷰의 경우였다.

2007년 초에 24부작 드라마를 기획하며 <미우나 고우나>의 최형자 작가팀과 작업을 했었다. 정말 신이 나서 4부까지의 원고가 탈고되었다. 총제작비 24억 원 중 50%도 협찬받기로 되었고 이제 편성되면 일주일에 두 편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편 당 제작비 1억 원이라면 시대물로는 턱없이 적은 제작비이다.

2007년 타사의 드라마 제작비를 보면 <태왕사신기>가 430억 원, <대조영>이 250억 원, <로비스트>와 <이산>이 120억 원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드라마 제작은 ‘쩐의 전쟁’ 중이다. 배용준의 출연료가 회당 2억 원이라는데 영화나 드라마나 돈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이 우선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턱없이 적은 제작비이지만 협찬을 더 받고 부천세트장이나 수원세트장을 염가로 대여하면 우리는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프로그램이란 제작비에 맞추어 제작하면 된다. 그러나 완성도를 생각해 마지막 까지 고수해야 할 제작비 하한선이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1억 원으로 책정해 예산서를 설계했다.

타 방송의 현대물 제작비에도 못 미치는 저가의 예산서로 일제강점기를 재연해낸다는 것은 애초부터 난산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로지 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자 작가와 나는 의기투합했었다. 작가들은 광명시 작업실에서 원고와 씨름하고 나는 자료조사를 하며 이 궁리 저 궁리를 하였다. 그러나 결론은 제작 불발이었다. 제작비가 문제였다. 십억 원이 넘는 제작비는 끝내 내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도 가슴을 설레며 기다린 결과치고는 너무나 허망하였다. 작가들을 위해 마련한 위로의 자리는 눈물의 파티가 되었고 동석한 한화백은 그녀들을 달래기에 안간 힘을 다했다. 나는 무책임한 연출자가 되었다. 달리 할 말이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애꿎은 술잔만 기울였다. 그야말로 공황상태였다.

술에 약한 작가들은 몇 잔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고 늦게 참석한 와이프는 나를 나무랬다. 그렇게 드라마 제작으로 바쁘게 지낼 것 같았던 예상은 보기 좋게 어그러졌다. 그리고 나는 다른 부서에서 한가로운 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다가 맡게 된 프로그램이 <한중수교 15주년 특집>이다. 50분 4부작 제작비로 편당 7천만 원으로 2억8천만 원이 책정되었다. 프로그램 제작 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였고 장장 9개월의 대장정에 들어섰다.

2004년에 제작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3부작의 제작비는 1억5천만 원이었다. 이전에 제작했던 <전통문화를 찾아서>가 300만 원대, <역사 속으로의 여행>이 400만 원대인 것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다. 물론 인건비는 빠진 상태이다. 비단 내 프로그램만이 그런 것은 아니고 모두가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구당 시청료 2,500원에서 3%(약 70원)만을 지원받는 EBS의 상황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프로그램은 책정된 예산만큼 풍요롭거나 축소되어 제작된다. 풍요롭다는 것은 스케일과 내용 완성도에 관련된 일이다. 예전에는 ‘예산’과 ‘인력’, ‘제작기간’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3요소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예산이 적어도 만들려는 ‘열정’이 그 자리를 충족시켜줄 수도 있다.

아래는 1997년에 기획했던 8일 야외 촬영, 주 1회 방송의 다큐멘터리 <전통문화 스페셜>의 표준제작비 예이다. 편당제작비는 3,832,140원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예산이었다.

▲ 예산 Ⅰ
▲ 예산 Ⅰ

아래는 2003년에 기획한 출장 프로그램 <TV 프라이데이>의 예산서이다. 편당 제작비는 5,250,180원이다.

예산 Ⅱ
▲ 예산 Ⅱ

나의 프로그램 제작의 지론은 정해진 예산과 여건에서 그 프로젝트를 반드시 해내야겠다는 것이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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