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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중국 촬영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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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중국 촬영 ③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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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용 HD카메라와 '동북아의 등불 청사초롱과 홍등' 2부 DVD
▲ 촬영용 HD카메라와 '동북아의 등불 청사초롱과 홍등' 2부 DVD

한중수교 15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동북아의 등불 청사초롱과 홍등>은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합작 건은 쉽지 않은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일이 진행됨에 따라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과연 이 일이 계획대로 될까 싶기도 하다. 중국 내에서의 촬영이 쉽지 않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장비와 인력을 부탁하기도 하고 아예 6mm 촬영을 시도하는 것이다.

북한에서의 촬영도 촬영팀의 경우 입국비를 내어야 한다는데 한국의 기자들이 만든 관례라고 한다. 모두가 그렇지 않을진데 너무도 쉽게 몇천만 원이 제시된다. 8월부터 10월까지 예정된 촬영은 여러 악조건에의 도전이다. 약 두 달간을 폭염과 싸워야 하고 또 어떤 이는 향수병과 싸워야 할 것이다. 나로선 연출자로서 행정적인 처리까지도 도맡아야 하는 상황이다.

두 달간의 체류를 생각한다면 장비 외에 개인 짐도 엄청난 양이다. 음식도 따로 챙겨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장기 촬영일정이란 제아무리 가고 싶은 나라이라도 보름간이 최대기간이다. 모두가 지쳐 갈 그 다음은 자신의 인내력으로 버텨야 할 일이다. 나로서는 정신력으로 전 일정을 책임져야 한다.

총 3만 공리(km)의 대장정도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일정이다. 하루 평균 500km를 달려야 한다. 서울 부산 간을 달려야 하는 거리인데 베이징과 상하이에서의 장기체류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하루 1000km 이상을 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5명의 작가들과의 소통과 원고작업 등 이 모든 것도 내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총 4부를 역사, 문화, 사회, 경제로 대별하였지만 얼마나 많은 내공을 가져야 가능할 작업인가. 끊임없는 시간투자와 열정으로 만이 해결될 문제이다. 7월 1일, 1부의 원고가 다시 수정되어 중국에 보내졌다. 오락가락하는 비 소식에 오늘 하루 종일 가랑비이다. 와야 할 비라면 굵은 빗줄기로 한바탕 쏟아지고 빨리 밝은 햇살을 보고 싶다.

광활한 중국 전 대륙을 돌며 촬영한다는 것은 중국인들도 생각하지 못한 거대 로케이션이다. 촬영 때 만나 우리의 이동경로를 듣고는 "따라나서고 싶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우리 촬영팀은 그 일정을 소화해냈으니 과연 의지의 한국인들이다. 그러나 처음에 차 두 대로 나누어 이동하다가 시간이 더 걸려 결국 이베코(Iveco) 버스를 빌려 한 대로 다녔다. 임차지에서 멀어지면 다시 새로운 차를 섭외해서 타고 다니다가 결국에는 비행기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중국은 넓고도 넓었다.

이러한 어려움도 있었지만 촬영 장비의 중국 반입도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는 HD카메라로 이 모든 촬영을 해야겠다고 장비 반입 허가 공문을 보냈지만 허가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합작처인 CCTV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어찌어찌 해결이 되었다. 다음 글은 북경에 도착 직후의 상황이다.

아침 일찍 드라마를 찍을 베이징 중앙방송 촬영소(중앙전시대중국영시성)를 답사했다. 약 50km 떨어진 허베이성 입구에 위치한 촬영소는 규모가 미국의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1/3이지만 둔황의 <신용문객잔>을 찍은 촬영소나 한국 나주의 <주몽> 세트장의 3배 되는 규모이다.

다른 세트장과 다른 것은 실제 규모의 석재를 사용해 지은 것이다. 과연 엄청난 세트장이다. 세트장은 <삼국지>나 <수호지>등을 찍어 각 시대 별로 열개 정도의 성이나 마을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어느 장소나 당장 촬영을 해도 될 만큼 잘 보존되고 있다. 특히 청대의 성인 '동작대'는 그 규모가 어느 영화에서 본 성보다 확실히 웅장하고 컸다. 나오다 사진을 보니 한중합작 영화인 <묵공>도 이곳에서 찍었다.

섭외는 중앙방송에서 하고 우리는 장소나 배우 등을 정해주는 대로 찍으면 될 것 같다. 중국 세트장에서 중국배우들과 작업한다는 것은 30년 전의 꿈이었는데 이제 실현이 된다. 1920년대 말 정기탁 감독이 <애국혼>에서 부터 <흑의의 기사> 등의 촬영을 상하이 세트장에서 했다. 그 때 그 촬영소를 방문한 이필우 촬영기사가 그 규모와 시설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귀국해 기행담을 신문에 실었다. 국내에서 배우활동을 했던 정기탁의 놀라운 변신도 놀라웁지만 세트장에서 본 느낌이 선진영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시간은 흘러 1960년대 말에 정창화 감독이 홍콩 쇼브라더스에 초빙되어 <천면마녀>나 <육자객>, <아랑곡> 등을 만들었다. 그리고 1972년에는 이소룡 선풍 전 미국에 첫 수출 된 <죽음의 다섯손가락>이 북미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이런 기록은 당시 30년이 지난 지금 이제 한류 열풍으로 중국대륙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 분위기는 계속 이어져야 하고 우리는 그 시대의 개척자들이 그러했듯이 외인부대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오후에는 해관(세관)에서 카메라를 인수했다. 여러 핑계로 장비 반환을 미루던 관계자들과의 신경전 끝에 전 회장은 중앙방송과 문화부 인준을 받아와 겨우 장비를 받아냈다. 그야말로 촬영의 반을 마친 기분이었다는데 내년 올림픽 관련해 7월 1일 부터 시행되며 완화된 장비 반입의 첫 케이스치곤 어렵긴 매일반이다.

내일은 1팀은 시안으로 이동해 둔황 촬영을 하고 2팀은 베이징에서 촬영을 한다. 나누어 촬영을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중국은 넓고 베이징 일정은 바쁘다. 더구나 예정에 없이 드라마 장면을 베이징 중앙방송 촬영소 허베이성 세트장에서 찍게 되었기 때문이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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