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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 스토리] 오토바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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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 스토리] 오토바이 이야기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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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한 오토바이는 특히 위험할 수 있다.
▲ 개조한 오토바이는 특히 위험할 수 있다.

1970년대 홍콩의 스타 부성(후시엥)은 오토바이와의 충돌 사고로 29살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오토바이 타기는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다. 1970년대 남성들의 최대 로망에 아마 오토바이가 베스트 3안에 들었을 것이다. 당시의 오토바이는 지금에 비해 조악한 수준으로 차체가 가벼워 사고가 더 많았다.

오토바이에 대한 환상은 1973년 <정무문> 다음으로 관객동원 2위의 흥행작인 영화 <섬머타임 킬러>의 영향일 수도 있다. 크리스 미첨과 올리비아 핫세가 출연한 이 영화는 청춘과 낭만, 그 자체였다. 그러나 오토바이조차 많지 않았던 시절이고 더구나 경주용 오토바이는 보기 힘들었던 시절이다. 바람에 장발이라도 나부낀다면 그건 더 말할 수 없는 남성들의 최대 바람이었지만 장발은 단속에 걸리고 오토바이는 돈이 없어서 못 탔다.

당시 신일룡 배우가 경주용 오토바이를 타다가 큰 부상을 입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여의도의 광장을 가로질러 오다가 그를 향해 쫓아오는 아이의 세발자전거를 피하다가 벌어진 일이다. 다리를 절단하여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버티었다고 한다.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고 심지어 수술 때 마취조차도 안하였다는데 믿기 어려운 의지력으로 버티어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그리고도 홍콩에서 촬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토바이를 탈 수밖에 없었다. 정창화 감독의 <귀계쌍웅>에서 멋진 오토바이 추격전이 나온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매점의 오토바이를 무단으로 빌려 타고 첫 운전을 해봤다. 그것도 뒤에 친구까지 태웠으니 참으로 무지한 일이다. 그러나 자전거로 통학하고 있었기에 운전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나는 꿈에도 그리던 오토바이를 한 대 마련하려고 부모님의 허락을 얻었으나 돈이 부족하여 하는 수 없이 경주용으로 개조한 오토바이를 어렵사리 마련했다. 내 오토바이를 타니 당연히 신났다. 붕붕 찻길이며 골목길을 누볐다.

오토바이와 사고는 타는 시간에 비례한다. 1977년인데 당연히 사고에 직면했다. 친구와 점심 먹고 타워호텔에서 신당동으로 내려오는 삼거리길에서 버스를 피하며 주욱 미끄러졌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오토바이 타기가 은근히 겁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입대를 하였는데 첫 휴가를 나오니 어머니가 오토바이 판 돈이라며 원금을 주셨다. 아마도 더 싸게 파시고 얹어서 주신 듯하다. 얼마나 속이 시원하셨을까는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세상사에 묻혀 다시는 오토바이를 탄 기억이 없다. 내게 오토바이는 생업과 관련 없는 취미생활이었기 때문이다.

PD생활을 하면서 EBS의 불우어르신 돕기 프로그램 <효도우미 0700>을 촬영하러 경상도 어딘 가를 갔다. 할머니의 소원이 벽에 청문을 하나 내달라는 소박한 것이었다. 얼마나 형편이 어려우면 그리 크지 않은 공사인데 그럴까 하고 가보았더니 왠 청년이 누워있었다. 아들인데 입대 전날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십몇 년째 저렇게 누워 지낸다며 아들을 위해 벽에 창을 내달라는 소원이었다.

딱한 것은 둘째 치고 평생을 누워 지낼 아들을 보니 새삼 안타까운 모정에 뭉클해졌다. 젊은 혈기만으로 타서는 안 되는 것이 오토바이다. 오토바이를 어쩔 수 없이 타는 분들을 포함하여 특히 입대 전 오토바이 타기는 더욱 조심해야 할 일이다.

국내에서 1973년에 개봉한 안토니오 이사시 감독의 '섬머타임 킬러'
▲ 국내에서 1973년에 개봉한 안토니오 이사시 감독의 '섬머타임 킬러'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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