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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 스토리] 나의 직함 호칭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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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 스토리] 나의 직함 호칭의 변천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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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함이 늘며 대중 앞에 설 일이 많고 스피칭의 기회가 늘어난다.
▲ 직함이 늘며 대중 앞에 설 일이 많고 스피칭의 기회가 늘어난다.

나의 직업과 관련된 호칭은 다양한 변천을 거쳤다. 그만큼 많은 일들을 해왔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물론 나보다도 더 현란한(?) 직함을 거친 분들도 많을 것이다. 우선 대학생 때부터 들었던 호칭이 감독이다. 물론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들었던 호칭이다. 그후 1986년 <사방지> 로 데뷔해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작가 호칭도 들었다. 영화인을 하면서 부업 차원에서 시작한 체육관의 관장 호칭도 쉽게 들을 수 있는 호칭은 아니다.

영화를 제작했던 한국생산성본부에서는 전문위원으로 있었다. 이후 감독은 오랫동안 들었던 호칭이다. 금관상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내겐 더욱 친근한 호칭이다. 그리고 방송사로 자리를 옮기며 PD로 불리었다. 그리고 차장, 부장, 팀장, CP(총괄 프로듀서) 등 그때그때 직함이 바뀌며 호칭이 바뀌었다.

방송사 근무하면서 겸임교수로 강의하며 교수 호칭도 곁들여졌다. 방송사 퇴직 후에는 정식 교수로 교수 호칭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내가 만들고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회장 자리도 5개나 된다. '한국이소룡기념사업회',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한국다큐멘터리학회', '끼사랑산악회' 등이다.

그 사이 한국독립영화제작센터의 제작본부장, 그 외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감사,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대위원, 각종 학회의 이사, 각 협회의 부회장, OO위원장, 자문위원, 그리고 2019년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수원지부 고문까지 맡아 드디어 고문까지 호칭의 영역을 넓혔다. 고문은 회비가 면제 된다는 조항을 보았는데 만감이 교차한다.

그러나 거저 얻은 자리는 아니다. 자문위원을 거쳐 부회장까지 10여 년 봉사(?)하고 얻은 직함이다. 그리고 어느날 인문콘텐츠학회 부회장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한국외대 정치행정언론대학원 동문회에서는 고문단장이라는 첨 듣는 호칭이 더해졌다. 고문진이 늘어나며 생긴 자리이다. 거의 통보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누군가 맡아 봉사를 하여야 하는 것을 잘 알기에 거절할 수가 없는 일이다. 두루두루 여러 자리를 맡아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 또 맡아 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활동 단체>

끼사랑산악회 회장(2007~현재)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감사(2016~2018)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대위원(2014~2018)

한국이소룡기념사업회 회장(2010~현재)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 회장(2011~현재)

다큐멘터리학회 등기이사(2011~현재)

안중근의사기념관 자문위원(2012~현재)

수원영화예술협회 부회장(2013~2019)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회장(2013~현재)

광주영화인협회 부회장(2015~2017)

수원문인협회 시나리오분과 위원장(2015~2017)

인문콘텐츠학회 기획이사(2016~2019)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자문위원(2017~현재)

중국영화포럼 대외교류위원회 위원(2018~현재)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원(2019~현재)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수원지부 고문(2019~현재)

인문콘텐츠학회 부회장(2019~2020)

한국외대 정행언대학원 동문회 고문단장(2022~현재)

한국다큐멘터리 학회 회장(2022~현재)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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