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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내 인생에 후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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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내 인생에 후회 없다
  • 안태근
  • 승인 2021.11.0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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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 추정지에서 촬영 중인 필자(2011년)
▲ 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 추정지에서 촬영 중인 필자(2011년)

인생의 60고개를 넘어서며 “사람은 나이 들면서 늙고 결국 죽는다.” 이 말이 문뜩 떠올랐다. 만고 진리인데 사람들은 허구한 날 같을 줄 알고 살아간다. 어느 날 문뜩 이 생각이 떠올랐다면 나이 들었다는 것이고 거꾸로 갈 수 없기에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남은 생을 잘 마무리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을 만드는 방법일 것이다.

나부터 더 나이 들기 전에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해보자. 새로운 일을 하기보다는 하던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과연 죽기 전에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인가? 자신이 짊어진 십자가를 무겁다고 내려놓을 것인가? 대신할 사람 없다면 그것은 나의 몫이다. 그저 묵묵히 순응해야할 일이다. 그것이 공적인 것이든 사적인 것이든 내게 주어진 일이라면 아무 말 없이 해내야 한다.

그것이 책임감이고 인생이다. 태어나서 무언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큼 멋진 일이 있을까?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보람찬 삶이다. 아마도 그것을 무덤까지 안고 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지도 모른다. 훗날 누군가가 알아준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고 모른다 하더라도 좋은 일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내게도 버킷리스트는 있다. 올해 작성한 것을 보면 ‘단편영화 만들기’와 ‘다큐멘터리 만들기’이다. 그중 하나인 다큐멘터리는 만들고 있다. 이런 소박한 것 외에 내게는 10여 년 전부터 작정한 것이 있어 세 가지 사업회를 병행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이소룡기념사업회’ 그리고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남은 하나는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이다. 내 주변에 많은 이들이 나와 함께 이 활동을 지원해주고 함께 활동하여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 말을 처음 듣는 누군가는 ‘대단하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 일이 대단하다는 건 ‘끈질기다’는 것이고 또한 실현가능성이 없는데 ‘무모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선 이소룡기념사업회는 2010년 11월부터 시작하였는데 졸저 『이소룡평전』의 계약금 100만 원으로 시작된 일이다. 의미 있게 써보자고 이소룡 세미나를 시작한 것이 벌써 12년차에 접어들었다. 세미나를 하면 제일 크게 소요되는 것이 식대이다. 백만 원을 벌기는 힘들지만 쓰기는 쉽다. 식대로 써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세미나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고마워 인근의 갈비집에서 흥청망청 써버리니 금새 없어졌다. 그것이 벌써 12년, 세미나는 올 10월 130회를 맞았다. 매달 1회씩 개최한 것이다.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역시 2013년에 졸저 『한국영화100년사』 출간을 기념해 세미나를 개최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97회를 맞았다.

나도 이렇게 될 것을 예정한 것은 아니다. 그저 매달 개최하다보니 지금까지 온 것이다. 처음부터 예정했더라면 질려서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그건 내가 쓴 저서가 34권에 이르는 것을 보면 똑같은 느낌이다. 쓰다 보니 34권의 저서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관심사가 많아서도 아니고 여러 과목을 강의해서도 아니다. 외형적으로는 그러한 이유이겠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듯이 매일같이 무언가를 기록하고 남겼기 때문에 이룬 일들이다.

또 하나의 사업회인 안중근의사뼈대찾기사업회 활동은 숭고하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한 미담이 아닐 수 없다. 평범한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일 수도 있는데 내 차지가 되었다. EBS PD시절인 2010년 <안중근 순국 백년, 안의사의 유해를 찾아라!> 다큐를 제작하고 중국 여순에 묻혀계신 안 의사의 묘를 추적 공개하였다. 한국방송 최초였다. PD협회에서 ‘이달의 PD상’도 받았지만 그게 끝일 수 없었다. 의사의 유해를 봉환하고자 백방으로 뛰었다. 정부 부처의 공무원을 만나 하소연하였지만 사업은 지지부진이다.

의정부 교구의 허 신부님이 이런 일은 함께 하자며 유해발굴의 순 우리말인 ‘뼈대찾기’로 작명해주어 사업회가 출범한 것이 2011년 3월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백방으로 뛴 보람 없이 지지부진한 건 처음부터 꼬인 일이이기 때문이다. 2008년 국가보훈처의 첫 발굴 이후 10년째 협상만 하고 있다. 그것도 사드 사태 이후로는 넘지 못할 큰 벽으로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사업회를 한다면 공연히 세월만 보낼 수는 없어서 책을 낸 게 벌써 4권이다. 책 내려고 시작한 사업이 아니건만 책만 낸 셈이다. 그리고 함께 하고 있는 세미나도 67회를 맞았다. 띄엄띄엄 생각나면 해오다가 요즘은 매달 줌을 이용해 원격세미나를 계속하고 있다. 아, 누가 들으면 “세미나에 미친 사람이구나!” 할만하다.

그런데 모르는 소리인 게 세미나하기가 얼마나 벅찬 일인가, 발제자 선정하랴, 세미나 장소 대관하랴, 기타 등등. 이제는 식사 대접은 꿈도 못 꾼다. 빈 독에 물붓기이니 내 용돈 다 쓰고 정기 후원하는 청주대 김수남 명예교수의 월 만 원으로는 턱도 없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발제를 하고 만다. 이제는 더 이상 발제할 내용도 동났다. 67회가 보통 숫자는 아니다. 지금은 맥이라도 잇고자 서울디지털대의 제자들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며 시네토크로 이어가고 있다. 이래저래 진퇴양난인 상황이다.

그래서 나 대신에 회장을 맡을 인물을 찾아 나섰지만 그야말로 꿈같은 소리이다. 2017년에는 모처럼 후원자를 만나 Ground Penetrating Radar(지표투과 레이더)조사로 발굴을 해보고자 여순박물관 관장을 만났다. 젊은 하위직 관장인 그는 일언지하에 당 중앙에 알아보라고 딱 잘라 말한다. 시진핑 주석을 만나 담판 지으라는 말인데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민간인인 내게 꿈같은 이야기이다.

당 중앙의 허락을 맡아오라는 그의 말은 그야말로 당연한 말이다. 지방의 하위직 공무원이 무슨 재량권이 있어서 안 의사의 유해발굴을 허락한단 말인가? 유해발굴이 아니고 지표투과조사로 흙은 파지도 않고 조사한다고 해도 절대 금물이라고 말을 자른다. 내 평생의 숙원사업이니 하다하다 직접 나선 것인데 그조차 허망한 일이 되어 버렸다. 자 이제는 가슴에 묻을 일만 남은 듯하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라고 다짐해본다. 아직은 젊지 않은가? 70보다 80보다 젊은 이제 60고개를 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궁리 중이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풀지 못할 숙제를 안고 사는 내 인생이다. 그러나 딱하지만은 않다. 내가 좋아서 내가 결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후회는 없다.” 누가 부른 노래의 제목이다. 

▲ 안태근 박사
▲ 안태근 (서울디지털대 객원교수,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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