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2-06-30 18:22 (목)
[잊지 않겠습니다] 강수연 배우
상태바
[잊지 않겠습니다] 강수연 배우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10 1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 강수연 빈소
▲ 고 강수연 빈소

강수연 배우가 2022년 5월 7일 오후 3시에 우리 곁을 떠났다. 그녀는 '당차다!'라는 한마디로 표현되는 여배우다. 강수연은 1966년생으로 동시기 또래 배우로는 조용원, 전인화, 김희애, 심혜진 배우가 있다. 그녀가 태어났던 1966년은 한국영화사에서 명작으로 꼽히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가 개봉된 해이다. 그녀가 이제 한국영화100년사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녀는 6살 때부터 TBC TV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하였고 성인 여기자로서 만개한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유명해졌지만 그녀의 끼는 이미 소문나 있었고 그녀가 제2의 김지미 배우가 될 것이라는 예감을 주었다. 1986년 KBS TV문학관 <들뻐꾸기>에서 당찬 연기로 모두를 놀래켰는데 그녀가 갓 스물이었을 때이다. 강수연은 1897년 이규형 감독의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로 아이돌 스타가 되었고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진정한 연기자가 되었다.

그녀는 연기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경지에 다다랐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의 물오른 연기력은 상복으로 이어져 베니스, 모스크바영화제 등에서 여자주연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 일찍이 그 누구도 받아본 적이 없는 상이다. 물론 최은희 배우가 북한에서 찍은 <소금>으로 1985년에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적은 있다. 한국영화사에서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화제작으로 뺄 수 없는 영화들이었고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인 수작들이었다. 

연예인의 삶만큼 살풍경한 것도 없다. 젊어서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야 하고, 부단한 노력으로 천운을 만나 스타가 된다. 그것은 백만 명 중의 한 명 꼴로 천운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 운이 평생을 가는 게 아니라는 점이 문제이다. 거의가 십년, 길어야 이십년이다. 때로는 이순재 배우처럼 반세기를 훌쩍 넘긴 이들이 나오나 그것은 거의 아주 드문 일이다. 게다가 살면서 중병이라도 얻으면 바로 끝이다. 인간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지만 모든 걸 다 잡은 상황에서 중병은 쇼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평소에 더욱 건강관리를 하게 된다.

강수연 배우의 예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어린 시절에 데뷔했기에 무명기가 길었고 월드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출연작 선정이 신중해지며 공백기가 길어졌다. 죽어서 추앙받는 것보다 살아서 행복한 게 바람직한 삶일 것이다. 1971년은 요절 스타 이소룡이 <당산대형>으로 홍콩영화계에 컴백하던 해이다. 강수연 배우는 그해에 TBC 드라마 <똘똘이의 모험>에서 여주인공인 이쁜이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아역배우를 할 때부터 똘망한 끼를 보여주었다. 똘망함은 똘똘함 내지는 당돌함을 뜻한다.

내가 조감독으로 참여한 KBS의 TV문학관 <우리들의 뜨거운 노래>에 출연한 아역배우 윤O선에게 "넌 몇 편이나 (출연)했니?"라고 묻자 빤히 쳐다보며 "그걸 어떻게 세어요?"라고 웃던 당찬 모습이 떠오른다. 아역배우들의 당참은 성인들도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그중에서도 강수연 배우가 대표적인 배우일 것이다. 강 배우와 TV문학관에 함께 출연하던 김O섭 배우가 강 배우의 당참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그게 임학송 PD가 연출하고 1986년 12월에 방송된 <들뻐꾸기>였다. 갓 스물의 강수연에게 다소 힘들 수 있는 당찬 씨받이 여인 배역이었지만 그녀는 능수능란하게 배역을 소화했다. 극중 양아십법(養兒十法) 등을 되내이는 강 배우의 연기는 앙징맞음 그 자체이며 누구나 보아도 감탄할 연기였다. 극중 병든 남편을 두고 첫날 밤 신혼방을 뛰쳐나와 동네 머슴과 불꽃 튀는 하룻밤을 지낸다는 <들뻐꾸기>는 그 이듬해 그녀가 출연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의 원형이 된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를 <씨받이>의 임권택 감독이나 송길한 작가가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보고 영감을 얻을 수 있었기에 드는 생각이다. <들뻐꾸기>에서 강 배우의 연기를 보고난 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를 보고 뜨악했다. 그야말로 당찬 씨받이 산모의 물오른 연기를 보여준 것이다. 지금도 많은 영화감독이나 배우들은 출산 장면을 연출할 때 눈여겨 볼만한 장면이며 연기였다.

이후 삭발 출연하며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아제아제 바라아제>까지 1987년 이후 그녀는 월드 스타로 등극했다. 김재형 PD의 <여인천하> 이후 한동안 알려진 출연작이 없었고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공개 예정인 <정이>의 개봉을 앞두고 궁금하던 차였다. 그녀의 뇌출혈 별세 비보를 듣고 망연자실해진다. 더 살아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