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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는 다큐멘터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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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는 다큐멘터리스트다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17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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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기록을 남기는 다큐멘터리스트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나는 기록을 남기는 다큐멘터리스트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나는 다큐멘터리스트이다. 그것은 기록을 남기는 사람이란 의미인데 기록은 문서나 영상 모두를 포함한다.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처음의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의 만화 그리기였다. 당시 레슬링 경기가 붐이었는데 레슬러의 그림을 그려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사진이다. 카메라를 구입해 애지중지하며 필름을 통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사진은 귀하게 여겨진 기록이다. 예전에야 흑백 사진이었고 사이즈도 작았다. 그야말로 기념하기 위한 수단으로 촬영되었고 흑백에 색을 약간 입힌 컬러 사진은 그 시대의 멋을 보여주고 있다.

기록으로서의 문서나 신문기록, 책은 우리에게 지금도 유용하다. 지금에야 SNS의 파격적인 영향으로 페이퍼 신문을 덜 읽지만 당시에는 눈뜨면 신문부터 뒤적였다. 신문이란 건 새로운 소식지이다. 물론 라디오를 통해 듣도 정시 뉴스도 있었지만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읽어 머리에 입력하는 게 더 확실하던 시절이었다. 라디오는 실황 등을 전하는데 더 유효한 매체이어서일 수도 있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하며 해외 경기를 전하던 아나운서의 감격적인 멘트를 들으며 현지의 상황을 실감하던 시절이다.

기록문서를 찾아 헌책방을 둘러보던 시절, 나는 청계천거리 헌책방의 단골손님이다. 책방 순례를 하다보면 서너 시간은 훌쩍 가는데 사지도 않을 책을 뒤적이며 고르던 꼬마 손님이었다. 그러다 눈에 띄는 책이 영화 관련서였는데 가격의 고하를 떠나 무조건 입수하였다. 그렇게 구입한 책이 누렇게 변색되어 아직도 나의 책장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옛 신문의 중요성은 당대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의 신문을 보노라면 당대의 생활상 및 여러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논문을 쓰기 위해 옛 신문을 뒤적이던 것도 이젠 추억이다. 지금은 신문의 원본에는 열람이 안되어 손댈 수가 없다. 마이크로 필름으로 보아야야 하고 구태여 옛 신문을 보러 도서관엘 가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미 각 신문사가 과거 기사를 SNS를 통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당대의 생활상을 인간의 창의력을 통해 보여주는 그야말로 생생한 타임머신이다. 특히 다큐멘터리 장르야 두말 할 나위없다. 당대의 생활상을 왜곡 없이 생생히 전해주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극장에서도 다큐멘터리를 흥행용으로 상영하였다. 그 이전인 일제강점기부터도 문화영화라고 하여 국가의 시책을 영상으로 소개하였다. 1960년대 <몬도가네(Mondo Cane: 이탈리아어로 '개 같은 세상')>라는 각국의 기이한 풍물과 풍습을 담아낸 다큐가 상영되었다. 시리즈로 제작되며 한국에서도 촬영하여 보신탕 문화를 소개하였다.

그런가하면 오지의 생태를 소개한 <사막은 살아있다>도 흥미롭게 보았던 추억이 있고 훗날 다큐PD가 되어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취재를 떠나기도 했다. 그 후 10편의 다큐멘터리영화와 174편의 방송다큐를 촬영하게 되었다. 지금도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후반작업 중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은 생생함을 전하기 위해서 왜곡은 금물이고 객관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시각이 중요하다. 잘못 만들어진 다큐멘터리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많은 사례가 있다. 독재자 히틀러 명을 받아 만든 레니 리펜슈탈의 여러 선전영화와 TV의 선동적인 다큐멘터리의 폐해가 그것을 증명한다.

이렇게 다큐멘터리스트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실상을 담아내며 나는 내 스스로가 기록을 남기는 사람이라는 걸 최근에야 인식했다. 바쁠 때는 일하느라 못 느낀 것이고 요즘 들어 한 숨 고르며 과거를 돌이켜 보니 드는 생각이다. 나는 영상 기록뿐만이 아니라 책으로도 여러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처음 쓴 책이 2007년에 촬영했던 한중수교 15주년 특집 다큐멘터리의 <청사초롱과 홍등>의 제작기이며 촬영후기이다. 글과 사진 모두 나의 기록이며 한 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여러 사람이 감수하고 정성을 들여 방송 후 5개월 만에 선보였다.

그렇게 책 한 권 쓰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글감도 충분해야 하지만 대중에게 읽히기 위한 공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저서를 34권이나 갖게 되었다. 놀라울 뿐이다. 평생에 100여 권이 넘는 책을 내신 분도 있으니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많은 책을 내게 된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희한하고 희귀한 책일 수도 있다. 『이소룡 평전』을 비롯하여 『이소룡을 기억하다』라는 전대미문의 책과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라는 특화된 전문서까지이다.

그것에 더해 『문화산업경영세미나』라는 나로서는 비전공의 서적까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종류의 다양한 저서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다양한 관심을 갖기 때문인데, 방송 다큐PD를 하였고 대학에서 다양한 과목을 가르쳤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접하며 쌓여진 글감이 책으로 나왔다. 물론 해외 취재를 하며 얻은 귀한 자료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기자나 방송PD를 하는 다른 이들이 나와 같은 책을 갖는 건 아니다. 그저 특이한 케이스이다.

방송PD로 24년간 근무하며 『나는 다큐멘터리PD다』라든가 『나는 드라마PD다』를 쓸 정도로 전문지식을 쌓았다 그렇지만 『나는 PD다』는 다른 분들이 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아무도 안 썼기에 내 차지가 되었다. 방송인이면서도 영화인인인 나는 2010년부터 서울 상암동의 한국영상자료원을 빌려 영화세미나를 하며 2013년에 드디어 『한국영화100년사』를 출간했다. 방송PD 시절이니 바쁘다고 못 쓰는 건 핑계이다. 그리고 『한국합작영화100년사』, 『한중일영화100년사』가 4년에 한 권씩 출간되었다. 이 책들은 내용으로 보나 부피로 보나 중량감 있는 역사서이다.

이번에 집필한 책 『선물 같은 내 인생』도 처음 해보는 작업이었다. 지금까지는 고인들의 기록을 남겼다면 살아있는 분의 일대기를 집필한 것이다. 요즘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가마치 통닭’의 김재곤 회장의 일대기이다.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함께 삶의 뒤안길을 여행하는 재미가 특별했다.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삶, 이건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다. 모든 건 다 하기 나름이다. 그야말로 본인하기에 달렸다. 여러분들에게도 직접 해보기를 권해보며 기록을 남기는 사람인 다큐멘터리스트의 길을 계속해 가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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