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7 03:22 (토)
[안태근의 다큐세상] (사)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으로 취임하며
상태바
[안태근의 다큐세상] (사)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으로 취임하며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1.18 12: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나를 하나 열 개를 하나 힘든 건 똑같다”는 안태근 회장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이미 여러 사업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내가 2022년 1월 15일 (사)한국다큐멘터리학회 총회에서 제3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한국다큐멘터리학회는 2011년 11월 25일, 다큐멘터리의 학문적인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다큐멘터리의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하고자 창립됐다. 주요사업으로 다큐멘터리 학회지의 발행 및 학술대회를 개최해왔다.

올해 11주년을 맞은 한국다큐멘터리학회는 한국 유일의 다큐멘터리 관련학회로서 나는 2011년 창립 당시 등재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그동안 지방대 근무할 때의 행사를 빼고는 꾸준히 활동해 왔다. 학회는 다큐 시대에 부응하여 한국다큐멘터리 발전의 구심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창립이 필요했다.

그러나 학회의 특성 상 학계 위주의 인사들만으로는 사업의 목표를 이루기 힘들기에 학계 인사들 외에 현업종사자들의 활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학회이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 제작에 종사하는 감독 및 PD, 작가들의 활동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더 많은 현업 종사자들을 영입하고 다큐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모두 참여하는 새로운 다큐학회를 만들고 싶다.

나는 현재 ‘한국이소룡기념사업회’,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안중근의사뼈대찾기사업회’, 그리고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동문산악회인 ‘끼사랑산악회’의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이렇듯 하는 일이 많은데 또 회장을 맡는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강대희 재미배우의 말마따나 "하나를 하나 열개를 하나 힘든 건 매일반"이라는 지론에 따라 또 회장직을 수락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희생과 봉사'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무한 책임감은 무엇에서 기인했을까? 그것은 나도 모를 일인데 그것은 나의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다. 처음 나에게 영감을 준 이는 대학 동문인 이윤수 원장이다. 그는 명동에서만 40여 년 비뇨기과 전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야말로 명동 지킴이이다. 요즘 코로나 펜데믹으로 명동이 한산해져 안타깝다는 그인데 십 몇 년 전부터 월례세미나를 해왔다. 성과학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한국 남녀 성 실태조사 킨제이보고서를 냈다. 그 세미나를 매달 개최해온 것인데 물론 회비도 있지만 자기 주머니를 털어 세미나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를 보며 나도 기회가 된다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기회가 왔다. 내가 집필한 『이소룡평전』의 원고가 드디어 푸른나무 출판사와 계약되어 1백만 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이를 의미있게 써보고자 이소룡의 70주년 탄생일인 2010년 11월 27일에 그의 영화 상영회와 세미나를 개최하기로 하고 서울 상암동의 한국영상자료원을 빌려 첫 행사를 가졌다. 마침 하와이에 살고 있던 이소룡 대역배우 김태정(예명:당룡)을 초대하니 이소룡 팬들로서는 그보다 좋은 일이 없었을 것이다.

계약금으로 그날 행사장을 찾은 손님들의 식대비용을 충당했다. 그런데 문뜩 어떤 분이 “다음 달 행사는 언제 하냐?”고 물었다. 나는 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음 달도 마지막 주 토요일에 할게요” 라고 계획에 없던 속내를 말했다. 행사 비용은 안중에도 없이 약속을 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세미나는 12년째를 맞고 있다. 한국 초유이기도 하지만 세계 초유의 일일 것이다.

그리고 2010년 3월 26일, EBS에서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백방으로 유해 환국을 알리던 중에 의정부 교구의 허윤석 신부를 만났다. “이 일은 온 국민이 함께 해야 한다”는 권유대로 2011년 3월 12일, ‘안중근의사뼈대찾기사업회’를 시작하며 사방을 다니며 유해발굴의 시급성을 호소했다. 사업회의 이름은 허 신부의 제안으로 작명되었다. 뼈대찾기란 유해발굴의 순우리말이다. 2014년 9월 30일, 이소룡 세미나가 끝나고 제1회 안중근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한국영화100년사 세미나는 이보다 더 이른 2013년 4월 28일에 시작되었다. 졸저 『한국영화100년사』의 출간을 기념하여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를 발족하며 세미나를 갖게 된 것이다. 이 모두 누구도 아닌 내 스스로가 결정하고 행동한 것이다. 일단 극장이라는 행사장이 확보되었기 때문인데 누구의 후원도 없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은 무엇보다도 하고자 했던 나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2021년 11월 드디어 세계 초유의 『한중일영화 100년사』가 출간되었다. 물경 13년간 이어온 세미나의 연구 결과물이다.

행사는 지방에 있던 호남대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서울에서 계속되었다. 지금은 코로나 펜데믹으로 집회가 불허되며 비록 줌 세미나로 이어가고 있지만 2022년 1월 29일 이소룡 세미나는 제133회 세미나를 맞는다. 함께 해왔던 한국영화100년사 세미나도 100회를 맞고 안중근 의사 세미나는 70회를 맞는다. 이 기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나도 모른다. 힘들지만 행복한 나날이다. 그것에 더해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에 취임을 했으니 나의 행복시대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