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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143회간 이소룡 세미나 소회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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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143회간 이소룡 세미나 소회 ①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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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세미나의 발단이 된 2010년 8월에 있은 브루스리데이 행사 때 당룡과
▲ 이소룡 세미나의 발단이 된 2010년 8월에 있은 브루스리데이 행사 때 당룡과

2022년 12월 31일 막을 내린 이소룡 세미나의 뒷이야기를 해본다. 부산에 내려간 김병학 씨와 통화 중 그간의 속내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기록을 남겨놓아야지 라는 생각이 서로 들었다. 기록은 소중한 것이기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식으로 써본다.

처음 시작은 내가 EBS PD였던 2010년 8월에 있은 브루스리데이 행사였다. 이소룡 광팬을 자처하는 20여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불을 지폈고 이에 상응하듯 『이소룡 평전』이 계약되어 계약금 100만 원이 입금되었다. 기대치 않았던 이 돈을 공익적으로 쓰고자 계획된 것이 2010년 11월 27일의 이소룡 탄신 70주년 행사인 ‘이소룡 영화제’ 및 ‘세미나’였다.

그 전 날 조선일보에는 내가 제보하여 당룡(김태정)이 소개되었고 무려 3면에 걸쳐 이소룡 특집판이 발행되었다. 이는 전무후무한 일로 ‘이소룡’과 『이소룡 평전』의 저자인 ‘안태근’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특집 판이었다. 거기에 당룡이라는 스타가 인터뷰를 하니 3면 발행이 가능했었다.

나는 기사를 보고 걱정부터 들었다. 내가 빌려놓은 상암동의 한국영상자료원의 3관은 정원 50석인데 넘쳐 들어오는 관객들을 어떻게 하나 걱정이 든 것이다. 그러나 관객은 정확히 그 숫자가 온듯하다. 아니면 왔다가 돌아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안에서 진행을 했기 때문에 밖의 상황은 보질 못했다.

팬들로서는 신나는 일이었다. 이소룡 영화 두 편을 상영했고 끝나고 <사망유희>의 이소룡 대역을 맡았던 당룡 배우와의 토크가 있었고 팬 사인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저녁때가 되었고 그대로 돌려보낼 수가 없어 인근의 ‘엉터리 고깃집’으로 몰려가서 당룡과 함께 식사자리를 가졌다.

즐거이 먹고 마시고 취중에 누군가 “다음 달에는 언제 합니까?” 물었다. 나는 취중에 “다음 달에도 마지막 주 토요일에 할까요?”라고 말해버렸다. 이미 계약금 100만 원은 다 쓴 상태였고 취중의 말이니 안 해도 그만인데 모든 건 나의 성격 탓이다. 내말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보다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팬들의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에 이소룡기념관을 짓고 싶었던 마음이 작동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내의 마음속에 이미 정해진 일일 수 있었다. 그렇게 이소룡 세미나가 개최되어 12월에 송년회를 하였고, 2011년 1월에는 신년회를 하였다. 한 달에 한 번씩 매달 개최되어 그렇게 13년이 흘러 2022년 12월에 제143회를 맞았고 나는 연초에 미리 예고한 대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그동안 심리적으로, 시간적으로, 금전적으로 내가 겪은 스트레스를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극장을 유료 대관하고, 매달 스타 초청하랴, 상영작 선정하고 DVD 확보하랴, 세미나 발제자 찾으랴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벌린 일이니 가능했다. 물론 주변에서 지켜본 학교의 동문들이나 연구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코로나19 이전까지 100여 회를 매달 개최하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014년 말 즈음 나도 사람인지라 50회 하고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스스로 결정했다. 딸도 옆에서 보니 쓰는 돈이 만만치 않은 것을 눈치 챘다. “아빠, 그만해요...” 만류를 했다. 시간, 예산 모두 축나는 일을 왜 계속하는지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세미나 장에서 나를 도와 준비를 했던 가족들이 귀찮았던 것은 둘째 치고 나의 열정이 과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들들은 돌아가며 촬영을 담당하였고 우리 처야 나의 못 말리는 성격을 아는지라 지켜만 보고 있는데, 가족 모두가 그만 두었으면 하는 눈치고 딸은 강력하게 만류했다.

그래서 그만 두겠다고 속내를 밝히니 무명씨(그의 이름을 밝힐 수 없어서 무명씨라고 하겠다.)가 나서서 “내가 도와줄 테니 계속 하시라.”했다. 거룩한 제안이었다. 그 말의 의미는 나의 자부담 금액 외에 찬조로 일조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다음 달부터 불출석이었다. 내뱉고 보니 상당히 무리한 발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일단 행사를 지켜보면서 보니 들어가는 경비가 극장 대관료, 스타와의 석식 식대(스타가 돈을 내는 법은 절대 없다), 발제자 교통비 지급 등 줄 잡아 몇 십만 원이 계산된다. 반만 부담한다고 해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이러니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70주년 전단지
▲ 70주년 전단지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이소룡 세미나의 단초가 된 이소룡 탄생 70주년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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