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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시길수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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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시길수 선배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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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3월, 시애틀에서 만난 시길수 선배(오른쪽)
▲ 2007년 3월, 시애틀에서 만난 시길수 선배(오른쪽)

시길수 감독은 한국전쟁으로 호적 나이가 1942년생으로 줄어있다. 실제 나이는 그보다 두세 살 많다. 그의 아명은 성욱이고 호적이름은 길수여서 영화계에서는 시성욱으로 불렸다. 그의 친구들을 보면 김학경 작가, 장형일 PD, 이일수 감독, 장석일 감독, 김문엽 작가 등이다.

그는 서라벌 예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할 즈음인 1963년에 김묵 감독의 집으로 두 달간 새벽문안을 다니며 결국 그의 연출부로 영화계에 입문한다. 그를 만나기 위해 두어 달을 그렇게 찾아갔는데 어느 날 드디어 김 감독이 얘기를 걸어왔다.

그는 한양영화사로 찾아오란 말을 듣고 저녁에 감독과 술을 한잔하게 되었는데 “자네 사람을 부리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부름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듣고 배우의 꿈을 접고 험난한 영화연출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공포의 8시간>은 그의 첫 영화이다. 조수 8명 중 막내가 되었는데 후에 국방부 전속감독이 된 강민호 감독이 퍼스트 조감독이었다. 강민호 조감독의 호통을 들으며 그만 둘까도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는 참고 견디어 내며 5년 만에 퍼스트 조감독의 자리에 오른다. 5년이라면 꽤 긴 세월인데 당시에는 10년이어야 가능했던 일이었다.

훗날 퍼스트였던 박호태 감독의 뒤를 이어 퍼스트가 되었다. 김묵 감독은 <성난 능금>, <용서받기 싫다>, <최후의 대결> 등의 액션 미스터리 영화와 대륙을 배경으로 한 영화 <광야의 호랑이>와 전쟁영화를 주로 만들다가 월남전을 배경으로 <맹호작전>을 연출하는데 이 때부터 그는 조감독을 한다. 이 영화는 1966년 말에 개봉되었었다.

그리고 조문진 감독의 <포옹>과 <두 아들>을 하고 박호태 감독의 <인생유학생>의 조감독을 마지막으로 <누명>으로 감독데뷔를 한다. 이때가 1973년이다. 이후 남진, 나훈아 주연의 <그 무덤의 한송이 꽃>을 찍었는데 제작자의 사고로 제작은 중단되고 말았다.

그 때 첫 컬러 방송을 했던 EBS의 PD공모를 보고 150명의 응시자 중 세 명의 합격자로서 EBS에 입사하게 된다. 이후 어린이드라마를 8년간 연출하며 원 없이 다작연출을 하였다. 그리고 기획제작부장을 맡으며 “PD는 프로그램으로 말한다.”고 부서원을 독려했었다. 내가 영화를 하다가 그 팀으로 발령받은 것이 그 무렵이다.

그는 낯선 방송가로 온 나를 안내하며 방송국 각 부서를 함께 다니며 자신의 후배임을 각인시켜주었다. 나로서는 방송사 안착에 성공했음은 물론이다. 그는 어린이 드라마는 좀 있다가 맡으라며 다큐멘터리 <전통문화를 찾아서>를 맡겼다. 처음에는 섭섭한 마음도 들었지만 어찌나 재미있게 제작을 하였는지 종영된 5년간 나는 그 다큐멘터리만을 제작했다.

그는 주석에서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후배들을 사기를 진작시켜주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선배가 어떻게 후배들을 대하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는 이후 편성국장을 역임하였다. 퇴직 후에도 EBS 사우회장을 맡아 일하다가 2005년 미국 이민을 떠났다. 그리고 시애틀에서 떡집을 오픈한다.

▲ 시길수 선배가 이소룡의 묘를 참배하고 헌화하는 모습
▲ 시길수 선배가 이소룡의 묘를 참배하고 헌화하는 모습

나는 이소룡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시애틀을 찾았다. 시 선배는 나와 함께 이소룡의 묘를 찾아 안내해주었다. 독실한 신자인 그가 진정으로 이소룡을 위해 기도하던 모습이 선하다. 이후 떡 가게를 아들 준이에게 맡기고 버지니아에서 제2의 인생을 맞았다.

그리고 2015년 통화 때 버지니아에서 미국 남동부에 있는 주 알라바마로 터전을 옮겨 현대자동차 현지공장에 취업했다고 전했다. 파이널 검수과정에서 일하는데 이 일은 다른 민족보다 한국인이 적합하다고 한다. 한국 같으면 나이 때문에 꿈도 못 꿀 일인데 그런 것을 따지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처음엔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다가 취업을 하였다니 과연 미국은 노동자의 천국이다.

알라바마는 1월의 평균 온도가 20도 정도로 더운 곳이며 조지아 주 옆이어서 반팔 옷을 입고 다닐 정도라고 한다. 이미 덴버에 사는 바비 김을 통하여 EBS 퇴임 후 호남대 교수로 자리를 옮긴 내 소식을 들었다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 알라바마는 바닷가도 있어 노후 생활보내기엔 좋은 곳이라며 인근 펜션 자랑에 한번 놀러오라는 말씀도 잊지 않았다. 건강한 목소리를 들으니 인생 2막은 이런 것이로구나를 실감했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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