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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탕!탕!탕!] 새해,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 사업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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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탕!탕!탕!] 새해,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 사업을 묻는다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1.11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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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 관동도독부 최종 보고 문건 (EBS 다큐 자료)
▲ 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 관동도독부 최종 보고 문건 (EBS 다큐 자료)

새해를 맞아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에 대해 다시 한번 촉구해본다.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사업은 2008년에 딱 한 차례 있었다. 그 한 번이 성공했다면 지금 우리 사업회도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의 발굴은 실패로 끝났고 14년을 맞기까지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사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국가인가 묻고 싶다.

남태평양 외로운 섬에 매장된 미군들의 유해를 찾아 국립묘지에 모시는 미국의 사례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의사의 유해 발굴과 환국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우리가 지목하는 의사의 유매 매장 추정지역에 묻힌 미군 병사의 유해를 그들은 GPR(Ground Penetrating Radar/땅속 탐사 레이더) 조사를 통해 발굴해 봉환해갔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사의 유해 모셔오는 일은 우리의 민족혼을 되살리는 일이며 그것은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발굴의 실패를 정당화하는 핑계는 너무도 많다. 2010년 EBS PD인 나는 <안중근 순국 백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당시 유해발굴 당사자들을 인터뷰하며 들은 이야기는 차마 글로 옮길 수 없을 정도로 치졸하다. "지하수 물길이라 유해들이 쓸려갔다", 혹은 "애초부터 매장하지 않았다"는 등 자신들의 실패 사유를 억지 주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그에 대한 선행조사를 하지 않고 아파트 건설공사를 중단시키며까지 갑자기 일을 강행했던 것일까? 당시 감옥소장의 딸인 이마이 후사코 할머니의 제보를 그토록 맹신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제보는 검증을 거쳐야 하고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 신문사의 안중근 의사 매장지 아파트 공사 보도에 자극받았다면 서둘러 피아를 가리지 않고 전문가의 찬반 검증을 거쳤어야 한다.

이 글은 그때의 결정과 일이 잘못됐다고 추궁하는 것은 아니다. 일이란 실패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단 한 번에 성공하리란 건 애초부터 바라지도 않은 일이다. 벌써 100년이 훨씬 지난 과거의 일이며 더구나 지하에 묻힌 유해를 발굴하는 일이다. 지금이야 GPR 조사가 일반화되어 발굴 자체가 땅을 직접 파야 하는 아날로그 방법의 시대도 아니다. 유해발굴이 훨씬 쉬워진 시대이지만 이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유해발굴의 포기는 후손으로서는 너무도 무책임한 일이다. 결코 2008년의 실패 사례가 안 의사 유해발굴 사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가? 애초부터 안 의사는 여순에 매장되었다는 여러 증언들이 분분하였지만 담당 공무원들의 귀에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안 의사가 여순에 매장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들은 증거도 없이 자신들의 주장을 펴고 있다. 그것은 발굴 자체를 막는 일이며 담당 공무원들에게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다.

1910년 당시 여순을 관할하던 관동도독부는 안 의사의 매장 최종 문건을 본국에 보고했다.(사진 참고) 그리고 담당 일본인 관리들이 회식을 하고 보상금을 받았다는 1910년 3월 29일 만주신보 및 만주일일신문의 기록도 있다. 그리고 기타 여러 증인들의 증언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2008년 3월 국가보훈처의 발굴사업도 이에 근거한 것이다.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안 의사의 묘를 답사했던 고 신현만 씨의 증언도 있고 1958년 부친 따라 참배한 이국성 씨의 증언도 있다. 그들은 분명히 그곳에서 안 의사의 묘지를 보았다. 묘비가 서있었던 사실도 증언했다. 그러나 발굴 반대론자들은 매장 후 다른 곳으로 이장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매장 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담당 일본인 관련자 외에는 알 길이 없다. 관련 기록이 없을 수도 있고 있었다고 한들 나타날 리 만무하다.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발굴이 지연되어서도 안 되고, 더구나 포기되어서도 안된다. 현재 일부 인사들의 도쿄 매장설 같은 불확실한 설들이 있는 것은 결국 이 사업을 포기하자는 것과 같은 유언비어다.

안 의사의 유해 매장지를 참배한 신현만, 이국성 두 증인의 증언은 여순구 샹양가 뒷산의 한 지역으로 일치하고 있다. 결국 뒷산 수인묘지 2열의 30m이내로 국한된 안 의사의 매장 추정지역은 지난 112년간 단 한 번도 발굴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지역의 발굴을 국가보훈처에 촉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아 직접 나서서 발굴하고자 했다. 발굴 후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를 물어본다면 관계자와 위정자들로서는 직무유기에 다름없다.

▲ 안태근(문화콘텐츠학 박사,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 회장)
▲ 안태근(문화콘텐츠학 박사,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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